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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고/겸손한 엄마의 콘텐츠39

엄마가 싸준 여름 반찬 시골 엄마의 여름. 산에서 들에서 캔 약초들과 옆집에서 가져다 주는 온갖 푸성귀들로 일감이 저절로 쌓이는 계절이다. 매일 나물을 다듬어 김치와 장아찌를 담그고 자식들이 오면 상에 내고 바리바리 싸주는 엄마의 삶. 서울에 살 때엔 오이지, 마늘장아찌 말고는 이렇게 저장 음식이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강화도에서는 온갖 반찬에 효소들로 남아나는 병이 없다. 다행히도 엄마의 시골 반찬은 늙어가는 자식들 입맛에도 잘 맞는데다 이건 뭐야, 어디서 났어, 어디에 좋아... 엄마와 긴 대화를 하기에도 딱 좋은 소재. "오이지처럼 무쳐먹어도 맛있고 피클처럼 그냥 먹어도 향긋하니 맛있지." "씀바귀 김치야. 최대한 연한 씀바귀로 만들어서 많이 쓰지 않을거야. 이건 약이려니 하고 부지런히 먹어." 집 주변이 모두 고추밭이라.. 2020. 1. 3.
엄마의 바느질 : 마더메꼬 2019 여름 원피스 마더메꼬의 성공적인 론칭과 함께 새언니들에게도 소문이 나서 아주 바쁜 상반기를 보냈던 우리 디자이너쌤. 지난 번에 같이 샀던 여름 옷감으로 안입은 듯 시원한 원피스를 제작해 주셨습니다. 시장에서 엄마가 이 옷감을 고를 때만해도 색이며 무늬며 너무 내 스타일이 아니라 노노! 안입을 거야! 크게 선언을 하였는데 제작하다보니 천이 너무 좋아서 추천할 수밖에 없었다며 새언니에 이어 내게도 한 벌 투척해 주셨다. 비치치 않고 충분히 길고 더운 여름, 아주 요긴하게 입은 원피스입니다. 이런 옷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건 민무늬 검정색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ㅋㅋㅋ 햇빛에 천이 타들어가도 검정 이젠 정말 끝. 2020. 1. 3.
엄마의 만두 엄마는 미국에서도 만두를 빚었다. 예상 밖은 아니다. 엄마의 여행 가방 속에서 국산 녹두 두 봉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녹두전과 녹두떡을 준비할 정도라면 만두는 뭐 몸풀기랄까;;; 떡을 누가 저렇게 썰었는지 모르겠지만;;; 미국 소고기 듬뿍 얹어서 진하게 한 그릇 뚝딱. 그래도 난 만두가 싫어. -_- 아무도 믿지 않지만. 이젠 정말 끝. 2019. 7. 22.
엄마의 전 : 녹두전과 꼬지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함께 전을 부친 나는 전에 있어서만큼은 엄마와 꽤 궁합이 좋은 콤비다. ‘이번에는 호박 절여서 해? 그냥 해?’ ‘생선은 이제 포 뜨지 말고 떠져있는 것을 사자.’ ‘육전 고기는 다 눌러왔어?’ ‘녹두전 두 가지 다 할거야?’ ​ 팔을 걷어부치면서 질문을 퍼부어대는 나를 보며 엄마는 천군만마를 얻을 듯한 표정을 짓곤 했다. 하지만 이것도 다 철든 후의 이야기. 아니, 정확히는 결혼 후의 이야기. (아니 몇 살 때 철이...) 그전까지는 아주그냥 질색팔색하며 제사와 전을 저주하던 아이였다. 자개무늬를 보고는 ‘얼마나 오래된 거야!’ 감탄하는데 우측에 쿠쿠 로고가;;; ​ 그러고보니 여기에는 제대로 된 육전이 없네. 다음 번에 제대로 된 황해도 육전 사진을 업데이트 해야겠다. ​ .. 2019. 3. 24.
엄마의 바느질 : 마더메꼬의 시작 엄마는 항상 나를 보며 옷 좀 사입으라고 했다. 그 말에는 많은 뜻이 들어있었기에 난 항상 발끈하거나 무시하곤 했다. '내 옷이 마음에 안 드나.'를 시작으로 '내 몸이 이런 걸'로 끝나는 비루한 생각회로. 못난 딸은 엄마의 걱정이 비난으로 들렸다. 그래서 엄마는 나랑 옷 사러 가는 걸 가장 좋아한다. 가격도 안본다. 어울리기만 하면 할부로라도 사라고 부추긴다.;;; 어느 날, 모 패밀리세일에 엄마랑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물어보니 그게 뭔진 몰라도 좋은 옷들이 있다면 무조건 간다고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70~ 80% 할인 중인 고급 아우터를 뒤로 하고 마리메꼬 매대에서 사이즈 없다고 아쉬워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충격을 받았다. 가성비 갑의 삶을 살아오신 엄마에게 마리메꼬 원피스는 존재 자체가 충.. 2019. 3. 20.
엄마의 여름 김장 ​작년 초여름. 극도의 슬픔과 불안함에 방황하던 엄마와 나는 갑자기 장사에 꽂혀서 가게를 보러다니곤 했다. 컨셉은 황해도 음식 전문점. 부동산 거래가 뜸해지기 시작했던 때라 가는 곳마다 환영 받았고 하루에 몇 군데씩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마음에 탁 드는 가게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메인 메뉴는 김치밥, 녹두전, 만두. 엄마는 장마가 오기 전에 여름 김장을 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가게 계약을 한 후에 하자고 했고 엄마는 그땐 비싸져서 아무 것도 못한다고 했다. 그때의 엄마는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왜때문에 우리집. ㅎ 농구보다가 갑자기 쪽파를 다듬게 된 남편. 이때 참 많이도 싸웠지. ​ ​나도 싫었는데 너도 싫었겠지. 하지만... (뒷말은 생략한다.) 다듬은 재료들과 함께 강화도로 이동. ​.. 2019.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