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안걸 2005. 4. 14. 21:58
4월 14일. 저녁 근무.


오늘따라 활기가 넘치는 저녁반 직원들이었다. 특히 후쿠다군의 변신으로 모두들 고무되어 있었다.
새로이 뿔테 안경을 낀데다, 짧게 자른 머리는 젤인지 무스인지로 삐죽삐죽 파격적으로 셋팅을 했는데
꽤 멋스럽게 어울렸다. 모두들 애늙은이 후쿠다의 회춘을 축하하며 시끌벅적 떠드는 가운데
사원들이 일렬로 등장하며 조회가 시작되었다.

헉! 그런데 저게 누구야. 하타노도 새로운 헤어스타일로 등장을 했다.
볼 때마다 밀어주고 싶던 구렛나루는 그대로 살린채;; 뒷머리를 짧게 치고 옆머리를 젤로 만졌는데,
양 옆 가운데를 향해 뾰족하게 만든 이상한 셋팅이었다. 머리에 띠만 두르면 완전 손오공.
본인은 모두의 탄성을 예상한 듯 쑥스러워하며 모습을 드러냈지만 다들 웅성거릴 뿐 별 반응이 없었다.
나는 귓속말로 이케다상에게 "드래곤볼 같지 않아요?"라고 말했는데 그걸 용케 들은 하타노가 내게 되물었다.
"아니 이상이 드래곤볼도 안단 말이야?" ;;;

아쉽게도 후쿠다의 머리는 조장언니의 따끔한 지적으로 인해 밑으로 가라앉았고,
하타노는 그 이상한 머리로 활보하고 다녔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찢어진 눈을 가늘게 뜨더니 다가왔다.
오늘은 또 뭘 물어보려나.

"원빈 좋아해?"
"에?"
"원빈 좋아해?"
"아, 가을동화 봤구나."
"응. 오늘도 보고 나왔어. 원빈이 좋아?"
"뭐. 그냥 보통. 그나저나 머리 잘랐네요?"
"(미소지으며) 응. 조금."
"드래곤볼 같아요. 어쩜 그렇게 가운데가 뾰족하게.."
"시끄러워." ;;;

금고 체크 때문에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이케다 혼자서 벽을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상. 이것좀 볼래?"

사무실 한쪽 벽면에는 공항에서 뽑은 역대 우수사원들의 영광스러운; 사진들이 주욱 걸려있었다.
거기에는 무서운 조장언니도 있었고, 미야자와의 2년전 모습도 있었다.

"아, 저도 가끔 이 사진들 봐요. 아는 사람은 둘밖에 없지만..."
"역시 이상도 눈치를 못챘군."
"네?"
"저기 오른쪽 맨 위에도 한명 있잖아."
"모르는 사람인데요?"
"가와사키(川崎)상이잖아."
"지금 있는 가와사키상이라구요? 저 사람이?"
"응. 그렇다니까."
"이름만 같은거 아니구요? 완전 다른 사람인데..."
"나도 이거 꽤 훑어보는 편인데 몇주 전에 알았지 뭐야. 놀랍지 않아? 지금이 훨씬 어려보이고 귀엽다구."

정사원인 가와사키상은 처음 본 순간부터 본 중 가장 귀엽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얼굴도 큰 편이고, 냉정히 말해 미인형은 아니지만 웃는 모습이랑 목소리가 너무 귀여워서
모두의 호감을 살만한 타입이었다. 그런데 사진속의 일년전 얼굴은 믿을 수 없을만큼 촌스럽고
개성도 없고 이상했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같은 사람일 수가 없었다.

"미스테리네요."
"그렇지? 역시 성형인걸까?"
"그러게요."
"오. 정말 이상이 보기에도 성형가능성이 있어보여? 난 내가 심한걸까 생각했거든."

순간 이케다상이 헉! 하며 놀랬다. 사무실 맨구석 책상에 하타노가 엎드려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타노라지만;; 정사원 앞에서 정사원 뒷담을 하다니... 그러나 하타노의 대답은 간결했다.

"내가 봐도 그 사진은 정말 쏠려요."

우리의 성형언급보다 그의 한마디가 더 막강했다. 그에게는 직속 선배가 아닌가.
이케다상과 나는 한건 잡았다는 성취감을 안고 사무실을 나왔다. 

"역시 하타노상이네요."
"쟤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집에 오는 길. 오늘이 블랙데이라는 걸 깨달았다. 양배추랑 돼지고기가 잔뜩 들어간 간짜장이 먹고싶다.
이런 날 짜장면이 먹고싶어지긴 또 처음이다. ;;; 우리 수녀회 멤버들은 다들 한그릇씩 챙겨먹었을라나...





이젠 정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