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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눌러앉기/2004-2006, Japan

성년의 날, 어른의 의미

by 하와이안걸 2006. 1. 9.
1월 9일. 월요일. 성인의날. 열시근무.


오늘은 일본의 성년의 날. 쉬는 날이다.
다들 성년과 멀어진지 오래라 오늘이 쉬는 날인줄도 모르고;
왜들 이렇게 공항에 사람이 많냐며 투덜거렸다.

다카하시와는 예상했던대로 어색했다. 성격상 잠도 못자고 고민했겠지. 
근데 은근 통쾌했다. 나도 참 사악해졌다;;;
유나가 날 보더니 입이 근지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맞추었다. 

"다카하시가 난데없이 고민있다면서 너 이야길 꺼내더라.
그러면서 너한테 받았다는 메일을 나한테 보여줄라고 하는거야.
근데 내가 말끊었어. 두사람 일은 두사람 알아서 하라고."

"아주 잘했어 -_-+"

그리고 자기는 한국 사람에게 특히 잘 대해주고, 말도 살살 했는데
믿었던 이상에게 그런 말을 들어서 충격이었다며 자존심 상했다고 했다. 
이것이 또 이제 다시 유나에게 붙는구나. 아, 사람들 말이 딱 맞았다. -_-;;;
다른 날보다 더 신경써서 열심히 일하고 집에 가는 길, 다카하시로부터 답장이 왔다.


'저의 발언이 이상에게 상처가 되었다면 미안합니다. 
그러나 그건 무시를 한다거나 감정이 들어간건 아닙니다. 그건 믿어주세요.
저의 말투가 힘들다고 하셨는데 그건 사원의 입장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상이 말한대로 공과 사는 분명한 것이고 저도 그걸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5년간 화과자관에서 일하면서 이렇게 일을 배웠고 이 방법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저를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매장에서의 저도, 집에 돌아가서 이상에게 메일을 보내는 저도 같은 제 모습일 뿐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상과 한국에서 사이좋게 지내고 싶습니다만
이상이 원치 않으신다면 유감이지만 저도 이상의 뜻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어떻게 답장을 보내야할지 엄청 고민이 되었다.
이 메일은 겉보기엔 아주 멀쩡하지만 다카하시를 아는 사람이 보면 모두 쓰러질 내용들이다.
여기에 하나하나 반박하기엔 너무 피곤했고, 간단하게 "싫어!" 하고 보내면 파장이 커질것 같았다.
그렇다고 다시 화해하는건 말도 안되고. 고민하는데 유나와 마키로부터 연속 전화가 왔다.
둘은 메일 내용에 픽픽 웃으며 그냥 보내지 말라고 했다. 그냥 내 의견을 말한걸로 충분하다고.
은근히 바라던 바였는데 안심이 되었다. 휴우;;

언젠가 다카하시가 그랬다. 자기는 일적으로 지적을 하는데 그걸 못받아들이고
기가 죽거나 표정이 바뀌는 사람을 보면 어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나도 옛날엔 그렇게 생각했다. 능력있는 사람이라면 포커페이스는 기본이라고.
그래서 표정관리에 서툴고 잘 우는 내가 싫어서 감추려고 감추려고 참고 참았다.

그러나 지금은 잘 감추는 사람보다 잘 드러내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안 되는걸 되게 하려고 내 속을 깎는 것보다 힘들더라고 빨리 인정하고 등지는 것도
때론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에겐 이것이 성장이라고 믿는다.

그래도 이렇게 멀어지겠구나 생각하니 속이 후련하면서도 조금 씁씁했다.




이젠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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