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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고

엄마의 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함께 전을 부친 나는전에 있어서만큼은 엄마와 꽤 궁합이 좋은 콤비다. ‘이번에는 호박 절여서 해? 그냥 해?’‘생선은 이제 포 뜨지 말고 떠져있는 것을 사자.’‘육전 고기는 다 눌러왔어?’‘녹두전 두 가지 다 할거야?’​팔을 걷어부치면서 질문을 퍼부어대는 나를 보며엄마는 천군만마를 얻을 듯한 표정을 짓곤 했다. 하지만 이것도 다 철든 후의 이야기.아니, 정확히는 결혼 후의 이야기. (아니 몇 살 때 철이...)그전까지는 아주그냥 질색팔색하며 제사와 전을 저주하던 아이였다. 자개무늬를 보고는 ‘얼마나 오래된 거야!’ 감탄하는데 우측에 쿠쿠 로고가;;; ​ 그러고보니 여기에는 제대로 된 육전이 없네.다음 번에 제대로 된 황해도 육전 사진을 업데이트 해야겠다. ​ 자, 황해도식 녹두..
노래방이란 무엇인가 노래방이 처음 나온 건 고등학교 때였다.라디오와 함께 90년대 가요를 공기처럼 여기며 살던 우리는노래방의 등장에 환호할 수 밖에 없었다.그렇게 십대 후반부터 함께한 노래방. 그땐 노래를 잘 부르건 못 부르건 관계 없었다.아무런 권력 없이 공평하게 나누어 부르고전주가 길어도 함께 기다리며 감상했다. 때로는 서로에게 신청곡도 권하고녹음 테이프로 만들어 간직하던믿을 수 없이 아름다웠던 시절. 그러나 우리 맘도 모른 채 노래방은 점차 오염되었다.문을 열고 불쑥불쑥 들어오는 취객.그리고 더한 오해를 받는 상황들.여자 손님이 오면 난감해하는 주인들이 늘어나면서한동안 끊고 살았다. 그러다보니 노래방은 이제 아주 친한 사람이 아니면 아니, 아주 친한 사람끼리도 그닥 가지 않는 곳이 되었다.갈 노래방도 없거니와 같이 갈..
엄마의 바느질 엄마는 항상 나를 보며 옷 좀 사입으라고 했다.그 말에는 많은 뜻이 들어있었기에난 항상 발끈하거나 무시하곤 했다. '내 옷이 마음에 안 드나.'를 시작으로'내 몸이 이런 걸'로 끝나는 비루한 생각회로.못난 딸은 엄마의 걱정이 비난으로 들렸다. 그래서 엄마는 나랑 옷 사러 가는 걸 가장 좋아한다.가격도 안본다. 어울리기만 하면 할부로라도 사라고 부추긴다.;;; 어느 날, 모 패밀리세일에 엄마랑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물어보니그게 뭔진 몰라도 좋은 옷들이 있다면 무조건 간다고 한걸음에 달려오셨다.70~ 80% 할인 중인 고급 아우터를 뒤로 하고마리메꼬 매대에서 사이즈 없다고 아쉬워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충격을 받았다.가성비 갑의 삶을 살아오신 엄마에게 마리메꼬 원피스는 존재 자체가 충격인 듯 했다. ..
엄마의 김장 ​작년 초여름. 극도의 슬픔과 불안함에 방황하던 엄마와 나는갑자기 장사에 꽂혀서 가게를 보러다니곤 했다. 컨셉은 황해도 음식 전문점.부동산 거래가 뜸해지기 시작했던 때라 가는 곳마다 환영 받았고하루에 몇 군데씩 열심히 돌아다녔지만마음에 탁 드는 가게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메인 메뉴는 김치밥, 녹두전, 만두.엄마는 장마가 오기 전에 여름 김장을 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나는 가게 계약을 한 후에 하자고 했고엄마는 그땐 비싸져서 아무 것도 못한다고 했다.그때의 엄마는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왜때문에 우리집. ㅎ 농구보다가 갑자기 쪽파를 다듬게 된 남편. 이때 참 많이도 싸웠지. ​​나도 싫었는데 너도 싫었겠지. 하지만... (뒷말은 생략한다.) 다듬은 재료들과 함께 강화도로 이동.​ 배추 절이는 동안..
엄마의 동네 ​부모님은 내가 결혼한 이듬해인 2010년 봄에 강화로 이사를 가셨다.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갑자기 강화도로 이사를 가신다니 자식들은 너무 황당했고시골 경험이 없는 할머니는 따라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리셨다. 삼년 안에 다시 서울로 오실 줄 알았다.그런데 올해가 십년차.내가 결혼 십년을 유지한 것만큼 놀라운 일이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앞산이 푸르다.가을에는 오색 낙엽이 양탄자가 되고 겨울에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이 반긴다.불안불안했던 나의 삼십대가 잘 넘어간 것은강화도에 천천히 뿌리내린 엄마아빠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시골살이 경험이 있는 아이의 정서가 어쩌구 저쩌구 이야기하지만어른의 정서도 바뀐다. 알쓸신잡에 나온 성공회 온수리 교..
엄마의 밥상 식당에서는 맛이 있건 없건 매번 사진을 찍는데엄마 밥상은 찍은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너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남겨볼까 함. 만두, 전복, 낙지, 불고기 전골인데;;;엄마의 반가운 마음이 두서 없이 들어간 것 같아서 볼 때마다 뭉클해진다.좋아하는 고구마순도 언제나 말려서 철마다 해주시고호박까지는 볶을 시간이 없어 언젠가부터 데쳐서 나온다. ㅋㅋ (그래도 맛있는 시골 호박) 오른쪽 끝에 푸른 김치는 강화 순무의 어린 잎으로 만든 열무김치로순무김치보다 더 귀하고 매력적인 음식. 맨 위의 고추장 찌개는 우리집 시그니처 메뉴.남편이 처음 우리 집에서 밥을 먹은 날 수많은 반찬을 제치고 저 찌개에만 밥을 두 공기 먹었다.엄마는 이게 무슨 일인가 당황해하고, 할머니는 그 모습을 마음에 들어했다.수없이 따라했지만..
엄마의 글씨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하셨던 서예와십년 전에 시작하신 표구와 병풍.예전에 만드신 자수 병풍은 어디에 있으려나. ​2019년 설날. ​작품이 늘어나면 밑으로 계속 꼬리를 내릴 예정입니다.이젠 정말 끝.
로동의 기쁨과 슬픔 프로젝트가 끝났다.정확히는 내 임무가 끝났다.사실 훨씬 일찍 끝날 줄 알았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오픈 직전까지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사이트 오픈 직전의 숨막힘. 오랜만에 느껴보는 쪼임이었다.그러나 오픈을 해도 들어갈 수 없는 사내 사이트. 매일 같이 그리고 수정하던 화면인데 이제는 구경도 할 수 없다니. 쳇.이런 쿨내나는 이별도 후련하긴 하지만. 내가 맡았던 일은 흥미로운 분야가 아니었다. 프로세스부터 용어까지 전문적이고 까다로왔다.(그래서 나에게까지 기회가 왔지만.)합류하자마자 밥도 못 먹을만큼 고생을 했고그걸 아는 다른 기획자들은 아무도 내 일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도움을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도움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혼자 견뎌야할 시간이 많았다. 설이 지나고 극적으로 퇴사일이 정해..
건강이 안건강해 잘 먹던 홍삼을 재주문할까 했으나거침없이 불어나는 몸이 홍삼님이 주신 식욕 때문인 듯 하여잠시 스톱하고 각자 체중 감량 계획을 세웠다. 남편은 새벽같이 일어나 운동을 하고 나는 오랜만에 저탄고지를 시작했다.어차피 같은 메뉴의 도시락 공동체.남편이 나의 식단에 숟가락을 얹으면서그의 생애 최초의 다이어트가 시작되었다. 벼르던 도시락 통도 사고 첨엔 아주 신났음. 샐러드를 대신할 토마토 야채수프도 한솥 가득.(이겁니다요! 스뎅 냄비 세트!!!) 그는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며 승승장구했지만나는 닷새 만에 조퇴를 하고 링거를 맞았다.탄수화물 먹으면 두통이 사라진다기에 죽을 한술 떴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다 나았다.이런, 쌀 없으면 못 사는 사람.다음 날 본죽 휴면계정을 풀었다. SBS 스페셜에서 간헐적 단식이 재조명..
오랜만에 그림 ​ 어떻게 해야 선이 또렷해지는지 어떻게 해야 색을 넣을 수 있는지 저 아이의 앞모습은 어떠했는지 아무 것도 몰라요. 취미도 공부 놀이도 공부 이젠 정말 끝.
광군절의 광녀 버는 만큼 쓴다는 말이 딱 맞는 요즘입니다.옷도 사고 신발도 사고 외식도 잦아졌어요.직구도 다시 시작해서 얼마 전에는 성황당 같은 터키산 러그가 도착했지요. (하늘이시여.) 자꾸 뭔가 부족한 것 같은 불안하고 이상한 사고도 장착되었어요.나의 사회생활은, 이 사회의 자본주의는얼마 안 남은 나의 미니멀리즘을 매일매일 아작내고 있어요. 그리고 오늘.절대 욕심내지 말자 다짐했던.스뎅 냄비를.난생 처음 세트로 질렀어요. 요즘 밥도 안하면서 웬 세트;;; (그, 그만해.. ㅠㅠ) 하지만 괜찮아요.진짜 싸게 샀고요.프로젝트는 곧 끝나기 마련이니까요.다시 백수가 되면 에브리데이 밥을 하겠죠.그때 이 아이가 있으면 얼마나 든든하겠어요! '돈 벌 때 사두길 진짜 잘했어!!!' 라고 생각하면서셀프 쓰담쓰담하겠어요. 아, 기..
천고나비 하늘은 높고 나만 살찌는 계절이 돌아왔다.생일이 있었고, 첫 월급을 탔으며, 결혼기념일도 챙겼다.이런 이벤트들 덕분에 근근히 버텼다 할 정도로여전히 일은 빡세고 출퇴근은 고되다.직장인들 모두 리스펙. 1. 생일 나이를 마이 먹었지만 생일은 꼭 챙기고 싶었다.언제나처럼 생일 기간을 넉넉히 두고;;; 오는 축하 막지 않고 넙죽넙죽 다 받아챙겼다.가족들 중 몇몇은 내 생일을 잊어버리기도 했지만 ㅠㅠ올해는 그런 해였으니까 훌훌 이해하고, 대신 셀프로 열렬히 챙겼다. 케이크가 무엇. 자정에 앳홈만으로도 땡큐! 가성비 좋은 뷔페 발견! (돈을 모을 수가 없네.) 맥주도 공짜! 아싸 클라우드! 홈쑈핑도 재개했다. 이것이 무엇이냐. 장안의 화제! 통돌이 오븐 ㅋㅋㅋ 그러나 가스렌지 안전장치 때문에 자꾸 불이 꺼짐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