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노래방에서 ​ 노래방 좋아하는 연예인을 찬양하던 차에 이런 노래까지 나와버렸다. (나만 소름) 이 노래를 듣게된 건 달라스의 한 설렁탕집에서; 가사에 노래방과 핸드폰이 나오길래 장범준이 또 무슨 잔망을 부리려나 싶었는데 결론은 권정열 할아버지 같은 노래가 나왔다. (칭찬입니다. 칭찬이지요.) ​​ 근데 그녀는 나를 바라보고는 자기도 지금 아무렇지 않지 않대요 해피엔딩 장인 이젠 정말 끝.
내가 날 모르는 것처럼 ​ 요즘 갬성을 포기한 나는요즘 갬성의 노래들도 잘 모른다. 하지만 이 목소리는 뭐랄까.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인데 과연 어디였는지, 누구였는지.그곳이 일본이었는지 서울이었는지. 기억 조차 잊게 만든 신비로운 목소리에나의 눈물버튼 카더가든이 더해지니나에겐 타이틀곡보다 더 강력한 러브송이 되었다. 끊이지 않던 질문에 숨어버릴 날 알면서무슨 이유로 나를 필요해 하나요. 상대방의 마음을 궁금해하지 말 것.이젠 정말 끝.
I get lifted ​ 2000년대 힙합에 머물러 있는 나에게빈지노 같이 말쑥한 사람은 왠지 힙합퍼가 아닌 듯 했는데이 노래로 그 편견이 씻겨 내려갔다고나 할까. 난 그냥 내가 나이길 원해난 내 친구들이 그대로이길 원해 노화란 그런 게 아니야. 친구 ㅠ이젠 정말 끝.
엄마의 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함께 전을 부친 나는전에 있어서만큼은 엄마와 꽤 궁합이 좋은 콤비다. ‘이번에는 호박 절여서 해? 그냥 해?’‘생선은 이제 포 뜨지 말고 떠져있는 것을 사자.’‘육전 고기는 다 눌러왔어?’‘녹두전 두 가지 다 할거야?’​팔을 걷어부치면서 질문을 퍼부어대는 나를 보며엄마는 천군만마를 얻을 듯한 표정을 짓곤 했다. 하지만 이것도 다 철든 후의 이야기.아니, 정확히는 결혼 후의 이야기. (아니 몇 살 때 철이...)그전까지는 아주그냥 질색팔색하며 제사와 전을 저주하던 아이였다. 자개무늬를 보고는 ‘얼마나 오래된 거야!’ 감탄하는데 우측에 쿠쿠 로고가;;; ​ 그러고보니 여기에는 제대로 된 육전이 없네.다음 번에 제대로 된 황해도 육전 사진을 업데이트 해야겠다. ​ 자, 황해도식 녹두..
노래방이란 무엇인가 노래방이 처음 나온 건 고등학교 때였다.라디오와 함께 90년대 가요를 공기처럼 여기며 살던 우리는노래방의 등장에 환호할 수 밖에 없었다.그렇게 십대 후반부터 함께한 노래방. 그땐 노래를 잘 부르건 못 부르건 관계 없었다.아무런 권력 없이 공평하게 나누어 부르고전주가 길어도 함께 기다리며 감상했다. 때로는 서로에게 신청곡도 권하고녹음 테이프로 만들어 간직하던믿을 수 없이 아름다웠던 시절. 그러나 우리 맘도 모른 채 노래방은 점차 오염되었다.문을 열고 불쑥불쑥 들어오는 취객.그리고 더한 오해를 받는 상황들.여자 손님이 오면 난감해하는 주인들이 늘어나면서한동안 끊고 살았다. 그러다보니 노래방은 이제 아주 친한 사람이 아니면 아니, 아주 친한 사람끼리도 그닥 가지 않는 곳이 되었다.갈 노래방도 없거니와 같이 갈..
초밥틀로 연어초밥 만들기 이번 일본 여행 때 꼭 사고싶었던 물건이 바로 아케보노에서 나온 초밥틀, 도비다세 오스시였다. 직역하자면 '튀어나와라 스시!!!' 자, 사진으로 설명이 되지요? ㅎㅎㅎ밥을 꾹꾹 누르고 와사비와 회(네타)를 올린 뒤 눌렀던 판때기를 뒤집어서 막혀있던 밥을 위로 쭉 밀어내면 끝. 토모미짱의 도움으로 아마존에서 저렴하게 구입했다.https://www.amazon.co.jp/%E6%9B%99%E7%94%A3%E6%A5%AD-%E3%81%84%E3%81%A1%E3%81%A9%E3%81%AB10%E8%B2%AB%E3%81%A7%E3%81%8D%E3%82%8B-%E3%81%A8%E3%81%B3%E3%81%A0%E3%81%9B-%E3%81%8A%E3%81%99%E3%81%97-CH-2011/dp/B00NAN9L4K 토..
파주 두지리 별장매운탕 : 어느 실향민 가족의 맛집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외가 식구들은 통일전망대에서 자주 모이곤 했다.자리를 펴고 제삿상도 술상도 아닌 상을 차리고황해도 어딘가의 들녘을 바라보던 식구들의 모습.북녘의 지명이 들어간 노래는 부르고 또 부르던 할아버지.어린 나는 당장이라도 뉴스 카메라가 달려올까봐 조마조마했다. 그때 식구들끼리 가던 민물매운탕 집이 있었는데외식이라면 다 좋았던 시절이었지만 그곳만큼은 예외였다.다행히도 한 두 번 가고는 통일전망대 모임도 끝이 나서자연스레 기억 속에서도 잊혀졌다. 그리고 작년에 산소 관리로 외가 식구들이 파주에 모이면서다시 그곳을 찾게 되었다. 한참을 달리길래 지도를 켜 보니 ​​이거슨 너무나 휴전선 ;;;;;; ​그곳은 파주 적성면 두지리 믿기지 않을 만큼 넓고 사람들이 많다;; 그때처럼 메기와 참게를 ..
엄마의 바느질 엄마는 항상 나를 보며 옷 좀 사입으라고 했다.그 말에는 많은 뜻이 들어있었기에난 항상 발끈하거나 무시하곤 했다. '내 옷이 마음에 안 드나.'를 시작으로'내 몸이 이런 걸'로 끝나는 비루한 생각회로.못난 딸은 엄마의 걱정이 비난으로 들렸다. 그래서 엄마는 나랑 옷 사러 가는 걸 가장 좋아한다.가격도 안본다. 어울리기만 하면 할부로라도 사라고 부추긴다.;;; 어느 날, 모 패밀리세일에 엄마랑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물어보니그게 뭔진 몰라도 좋은 옷들이 있다면 무조건 간다고 한걸음에 달려오셨다.70~ 80% 할인 중인 고급 아우터를 뒤로 하고마리메꼬 매대에서 사이즈 없다고 아쉬워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충격을 받았다.가성비 갑의 삶을 살아오신 엄마에게 마리메꼬 원피스는 존재 자체가 충격인 듯 했다. ..
엄마의 김장 ​작년 초여름. 극도의 슬픔과 불안함에 방황하던 엄마와 나는갑자기 장사에 꽂혀서 가게를 보러다니곤 했다. 컨셉은 황해도 음식 전문점.부동산 거래가 뜸해지기 시작했던 때라 가는 곳마다 환영 받았고하루에 몇 군데씩 열심히 돌아다녔지만마음에 탁 드는 가게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메인 메뉴는 김치밥, 녹두전, 만두.엄마는 장마가 오기 전에 여름 김장을 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나는 가게 계약을 한 후에 하자고 했고엄마는 그땐 비싸져서 아무 것도 못한다고 했다.그때의 엄마는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왜때문에 우리집. ㅎ 농구보다가 갑자기 쪽파를 다듬게 된 남편. 이때 참 많이도 싸웠지. ​​나도 싫었는데 너도 싫었겠지. 하지만... (뒷말은 생략한다.) 다듬은 재료들과 함께 강화도로 이동.​ 배추 절이는 동안..
엄마의 동네 ​부모님은 내가 결혼한 이듬해인 2010년 봄에 강화로 이사를 가셨다.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갑자기 강화도로 이사를 가신다니 자식들은 너무 황당했고시골 경험이 없는 할머니는 따라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리셨다. 삼년 안에 다시 서울로 오실 줄 알았다.그런데 올해가 십년차.내가 결혼 십년을 유지한 것만큼 놀라운 일이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앞산이 푸르다.가을에는 오색 낙엽이 양탄자가 되고 겨울에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이 반긴다.불안불안했던 나의 삼십대가 잘 넘어간 것은강화도에 천천히 뿌리내린 엄마아빠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시골살이 경험이 있는 아이의 정서가 어쩌구 저쩌구 이야기하지만어른의 정서도 바뀐다. 알쓸신잡에 나온 성공회 온수리 교..
엄마의 밥상 식당에서는 맛이 있건 없건 매번 사진을 찍는데엄마 밥상은 찍은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너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남겨볼까 함. 만두, 전복, 낙지, 불고기 전골인데;;;엄마의 반가운 마음이 두서 없이 들어간 것 같아서 볼 때마다 뭉클해진다.좋아하는 고구마순도 언제나 말려서 철마다 해주시고호박까지는 볶을 시간이 없어 언젠가부터 데쳐서 나온다. ㅋㅋ (그래도 맛있는 시골 호박) 오른쪽 끝에 푸른 김치는 강화 순무의 어린 잎으로 만든 열무김치로순무김치보다 더 귀하고 매력적인 음식. 맨 위의 고추장 찌개는 우리집 시그니처 메뉴.남편이 처음 우리 집에서 밥을 먹은 날 수많은 반찬을 제치고 저 찌개에만 밥을 두 공기 먹었다.엄마는 이게 무슨 일인가 당황해하고, 할머니는 그 모습을 마음에 들어했다.수없이 따라했지만..
엄마의 글씨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하셨던 서예와십년 전에 시작하신 표구와 병풍.예전에 만드신 자수 병풍은 어디에 있으려나. ​2019년 설날. ​작품이 늘어나면 밑으로 계속 꼬리를 내릴 예정입니다.이젠 정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