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아빠의 노포8 종로 백제정육점 : 밥 반 고기 반의 육회비빔밥을 원하신다면 종로5가에는 보령약국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오래된 백제약국도 있다. 그리고 백제약국 골목으로 쑥 들어가면 오늘의 맛집이 나오는데... 아빠의 가르침 중에서 기억에 남는 하나는 술 마실 때 안주를 잘 챙겨먹으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것은 잔소리도 아니고 염려와도 거리가 먼 술이 셌던 아빠의 소신이며 자랑이었다. 그 중에서도 늘 이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나는 언제나 한 귀로 흘려들었다. 신촌과 홍대로도 놀거리가 넘쳐났던 나에게 종로에 있는 정육식당은 안중에도 없었다. 조금 더 커서 광장시장이 뜨기 시작했고 시장통 육회 골목에서 파는 육회 한 접시의 맛도 알게되었다. 아빠는 내가 육회 이야기를 꺼내자 다시 이곳을 열심히 추천하였지만 불야성의 광장시장을 두고 건너편 불 꺼진 골목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 2024. 2. 3. 도화동/공덕역 본점 최대포 : 양배추가 달아요. 그때처럼. 마포에 지하철이 없던 시절. 마포와 여의도에 지하철이 뚫리면 창밖으로 한강물이 보이는 건가 상상했던 시절. (역시 과학적 공부 머리가 없음;;;) 아빠는 매일 술을 드셨고 엄마는 매일 벼르셨다. 일은 안풀리는데 집에 가면 무뚝뚝한 자식들이 가득하니 아빠는 술이 고프고, 상의할 것도 많고, 돈 들어갈 곳도 산더미인데 아빠 혼자 취해서 들어오니 엄마는 막막했겠지. 아빠는 엄마에게 혼날 것 같으면 나를 이곳으로 몰래 불러냈다. 성적이고 학교생활이고 조금도 묻지 않고, 계속 음식 이야기만 하셨다. 나 역시 취한 아빠의 이야기엔 관심이 없었다. 외식이 좋아서 따라나온 어린 보호자일뿐이었다. 아빠의 먹는 속도를 보면 주머니 사정을 알 수 있다. 식탐은 유전이라 나 역시 아빠에게 모두 읽혔겠지. 우리는 고깃집에서 양.. 2021. 3. 8. 장충동 평양면옥 : 짭짤한 이북김치와 담백한 만두 (오늘은 엄마 버전) 어릴 적, 엄마와 큰 시장에 가는 걸 좋아했다.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 경동시장 등등... 어느 시장에 가도 나는 금세 배가 고팠고 엄마는 늘 포장마차에서 유부국수를 사주셨다. 한 그릇을 나눠먹으면 아쉬운 듯 모자랐지만 국수를 양보하는 엄마를 보며 눈치껏 배부른 척 하던 시절. 오백원짜리 국수 한 그릇도 이렇게나 황송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엄마는 이곳의 문을 열었다. 동대문 인근에서 가장 크고 으리으리했던 건물. 가게 안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고 둘이서 한 그릇 시킨다고 핀잔을 들었던 것도 같다. 내가 좋아하는 냄새는 어디서도 나지 않았고 눈앞에 놓인 싱거운 냉면도 영. 평냉알못의 어린 나는 거의 먹지 않았고 엄마는 국물까지 깨끗하게 비우셨다. 지금 생각하면 다행이지 뭐야. 3X년이.. 2020. 2. 4. 명동 미성옥 : 입술로 확인하는 좋은 설렁탕 구별법 명동이란 무엇인가.옛날에는 친구들과 쇼핑하며틈새라면, 할머니국수, 명동칼국수를 먹던 곳이지만 (역시 면식가)지금은 세계인의 거리, 글로벌 야시장이 된 것만 같다. 아빠와 함께 뚜비뚜바 찾아갔던 미성옥. 설렁탕은 여기!라고 늘 힘주어 말씀하셨다. 그때나 (지금이나) 왜 여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ㅎㅎㅎ 미식대장 안주대장 아빠가 그렇다면 그런 것. 선불이라고 되어있지만 이렇게 사람이 없을 때는 그냥 나중에 주세요~ 라고 하신다. 아빠가 극찬하는 김치와 깍두기.국물이 많은 건 이북식이라 치자 (그래도 너무 빨개)이렇게 달달한 김치를 좋아했다고? 유명 체인점에서 뽀얀 육수를 만들기 위해우유나 프림을 넣는다는 소문을 들은 후부터는이런 맑은 국물의 설렁탕이 좋아지긴 했다. 처음엔 고기가 적나? 싶지만먹다보면 계속 계.. 2020. 1. 10. 여의도 따로국밥 유성 : 여의도 밥집에 대한 추억 하나 밥 따로 국 따로 나오는 게 뭐가 그리 특별했을까.말아서 나오는 국밥이 점점 없어지는 요즘,따로국밥이라는 말 자체가 귀하고 재미있게 느껴진다. 어제는 따로따로 우린 못 만났네 오늘도 따로따로 우린 못 만났네 따로국밥 하면 이 노래가 자동 재생되는 나란 사람 늙은 사람 ㅠㅠ아주 고릿적에 이 둘을 연결시킨 꽁트가 있었단 말이다! 원준희도 나왔단 말이다!그게 왜 잊혀지지 않는 거니... 중학교 때. 여의도 MBC 근처에서 딱 3년을 살았다.그때 새로운 음식으로 받은 자극들이 지금도 생생하다.양념통닭을 처음 먹었던 기억.피자인에서 처음으로 피자 배달을 시켰던 기억.생크림 케이크를 처음 먹고 놀라 소리지를 뻔한 기억. 이렇게 집에서의 기억은 달콤했지만 나가면 달랐다.방송국 사람들과 증권맨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던 거.. 2020. 1. 10. 청진동 피마길낙지실비집 : 한국식 매운맛의 원조(구,이강순실비집) 낙지볶음이란 무엇인가. 무교동 낙지란 또 무엇인가. 어릴 때 가 보았던 몇몇 낙지집을 떠올리며 무교동이 정확히 어디인지 검색했더니... 유명한 낙지집은 무교동에 없었어 ㅋㅋㅋ 그나마 유림낙지가 가까우려나. 내가 매운 음식을 그나마 잘 먹는 것은 어릴 때부터 이 낙지볶음에 길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애주가였던 우리 아빠는 낙지볶음도 참 잘 사오셨다;;; 밤늦게 아빠가 들고 온 누런 종이봉투. 안을 열면 이미 매운 냄새로 가득했다. 그리고 미지근해진 단무지와 콩나물. 한잔 하시다가 식구들 생각나서 사오셨겠지만 엄마는 왜 이런 데 돈을 쓰냐고 한숨을 쉬셨다. 그리고 어린 나는 왜 아빠는 낙지와 골뱅이에만 술을 드시는지, 왜 아빠의 안주는 치킨이 아닌지 안타까워하며 한숨을 쉬었다. 외식도 마찬가지다. 갈비나 돈.. 2019. 12. 26.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