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포차의 세계를 알게된 건 10년 전.
곰달래길 초입에 있는 엄마네 포장마차와
그 엄청난 곳으로 나를 이끈 재화 덕분이었다.
그녀는 술 한방울 없이 오돌뼈만 먹는 신공을 보여주었고
떡볶이 사다먹듯 오돌뼈 테이크아웃을 시도했다.
그리고 나의 신혼집이 재화네 옆골목이 되면서
말로만 듣던 엄마네에 나 역시 입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메뉴를 쓸어먹었지... (회상)
남편도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한 걸 보면 술도 좀 마셨던 것 같다.
메뉴도 안 붙어있고 가격은 더더욱 알 수 없는
그냥 말만 하면 뚝딱 만들어주시는 한국형 심야식당.
아직도 그곳의 바싹 볶은 오돌뼈와 잘 익은 열무김치가 생각난다.
아, 그리고 현금을 좋아하던 사장님도... ㅋㅋㅋ
여름에 다시 강서구로 이사를 오고
동네 맛집들을 검색해 보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되던 곳이 여기.
밤도깨비에서 정형돈이 후루룩 먹던 매운 칼국수집이 여기!
저렴한 포장이사를 선택한 대가로 짐 정리가 끝나지 않던 어느 여름 밤.
한껏 예민해진 우리는 모든 걸 잊고자 포차로 향했다.
싼 듯하면서도 비싼 듯한 이 헷갈림 무엇.
오랜만에 느껴보는 실내포차의 마력에 벌써 취한 것 같았다.
칼국수가 나왔다.
사실 놀라웠던 게 모든 테이블에서 1인 1칼국수를 하고 있는거라.
유모차를 끌고 나온 어떤 가족은
사이다에 칼국수만 후루룩 먹고 나가더라.
이 모습을 본 김팀은 우리도 2개를 시켜야겠다고 했지만
내 취향은 아닌 것 같아 하나만 시키자고 우겼다. 그런데...
으헉!!!
포차는 훼이크였네. 여긴 칼국수 맛집이었어 ㅋㅋㅋ
물론 김치도 없고 라면스프도 약간 들어간 듯 하지만
보기보다 자극적이지 않고 상당히 부드럽게 넘어간다.
술 먹고 라면 찾는 사람들이 환장할 맛.
김팀은 이미 환장해서 한 그릇을 더 시키고...
오픈된 주방에서는 끊임 없이 칼국수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들통에 팥죽을 쑤는 듯한 모션이 계속 보였다.
간단하게 칼국수로 한끼 때운 것 같은데
생각보다 거금이 나와버렸다.
역시 마성의 실내포차...
이후 여기에 꽂힌 김팀은
친구도 데려오고 우리 오빠도 데려오고 (네?)
온갖 지인을 다 데려와서 집들이 대신 진미집 번개를 했다.
갈 때마다 칼국수를 전파하며 먹고 또 먹고.
그리고 한달만에 질려서 이젠 안 간다. (반전)
소오름
이젠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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