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의 BGM
'우울증 치료를 위한 뉴테라피 음악'을 모토로 하는 페퍼톤스가 드디어 2집을 발표했다. 페퍼톤스는 사요(신재평)와 노셀(이장원)으로 이루어진 남성 2인조지만, 1집 때 본의아니게 에이스 역할 해 주신 객원 보컬 뎁(Deb)의 존재감이 너무 컸던지라 2집에서는 이들만의 음악 노선을 어필하는 데에 중점을 둔 것 같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뎁 또한 얼마 전 정규 1집을 발표하였으니, 그 후에 낸 이들의 2집이 더더욱 궁금해진다. 보도자료를 보니 1집 때의 좌 뎁, 우 연희(westwind)는 물론, 라이너스의 담요의 연진 등이 새로이 객원 보컬로 참여했다고. 오호라~ 좀 더 상큼해진 그들의 새 앨범을 기대하며 고고씽! 플레이 한 지 십초도 안되어 시부야 계의 대부 피치카토 파이브(Pizzicato Five)가 퍼드득 떠올라버리는 인트로 'Now We Go'. 수준 높은 경쾌함이 앨범의 기대치를 확 높여주는 트랙이다. 특히 1집에 비해 다채로운 악기 구성이 돋보이는데, 이는 요소요소 재미지게 파고들어 헤매지 않고 제 역할을 해낸다.
뒤 이어 나오는 'Balance!'. 흥겨운 플룻 소리가 돋보이는 이 곡은 두근대는 리듬 위에 노셀이 직접 보컬을 맡은 트랙이다. 1집 때에도 남자 보컬의 곡 'Fake Traveler', Everything Is OK' 등등에 큰 위로를 받았던지라 남자 보컬의 이른 등장(?)이 결코 당황스럽지 않다. 오히려 밝은 메시지를 던지는 멤버들의 풋풋한 보컬이 반가울 따름. 또 다른 멤버 사요가 부르는 'New Hippie Generation'은 무려 타이틀곡! 마이앤트메리의 '공항 가는 길'을 듣는 듯한 신나는 모던 락 전주에, 따뜻한 봄날에 땡땡이 치고픈 사회인의 자기 위안을 그려냈다. '햇살엔 세금이 안붙어 다행이야'라는 깜찍하면서도 왠지 서글픈 노랫말이 직장인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타이틀곡으로 밀기엔 (까놓고) 너무 못불러 아쉽다는 의견이 많은 듯. 그런데 또 이런 가사는 너무 이쁘게 잘 부르면 좀 안어울리지 않나. 지금 슬픈건지 안슬픈건지, 피곤한지 안피곤한지도 모를 기름기 쭉 빠진 남자 보컬이 개인적으로는 더 어울린다고 생각함. 확실히 이번 앨범에서는 남자 보컬의 영역을 넓혀 멤버의 존재감을 심어주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그런 의도라면 차라리 'Balance!'를 타이틀곡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남녀노소 누가 불러도 말랑한 멜로디에 무엇보다 반주만 들어도 긍정의 에너지가 확 솟아나는 딱 페퍼톤스 스타일!
여자 객원 보컬의 귀여운 목소리가 듣고싶다면 아래의 곡을 주목해 보시길. 아카펠라 그룹 보이쳐에서 소프라노를 맡은 김현민이 보컬로 참여한 '해안도로'. 오와, 도대체 이런 여성 보컬들은 어디서 찾아내시나요. TV에 나오는 아이들 말고도 숨겨진 예쁜 목소리가 너무도 많구나 싶어 흐뭇해진다. 참으로 한국적인 성대를 지닌 이 굵지 않은 보컬! 게다가 소근거리지 않고 짱짱하게 질러주시니, 진정 제주도 렌트카 안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있는 듯 시원하다. 길과 여행 등등 '이동'에 연연하는 이들의 또 다른 산책곡 '오후의 행진곡'은 1집 때 뎁과 헷갈릴 정도로 귀여운 목소리를 들려주었던 연희(westwind)가 부른 곡. 동시같은 노랫말에 동요같은 단순 멜로디를 가진 봄날의 산책 욕구송이다. 라이너스의 담요의 연진이 참여한 'Galaxy Tourist'는 외계인과의 조우라는 독특한 컨셉을 지닌 곡으로 그녀의 달콤한 영어 발음을 오랜만에 '감상'할 수 있다. 많은 팬들이 고대했던 뎁의 곡 'Drama'는 유감스럽게도 조금도 말랑하지 않다. 확성기를 쓴 듯 거칠게 처리한 목소리에 반복되는 '무엇입니까?'의 딱딱한 말투까지. 게다가 비트는 좀 강력한가. 처음에는 이런 곡을 멤버들이 불렀으면 어땠을까 싶었는데, 자꾸 듣다보면 뎁의 샤우팅에 은근히 중독된다. 어쨌든 강하게 인상에 남는 매력적인 곡.
두 멤버의 놀라운 의욕을 보여주는 트랙들로는 먼저 노셀이 부른 'Diamonds'. 1집의 'Superfantastic'의 새로운 버전인가 싶을 정도로 닮은 반주에 어깨가 들썩인다. 보코더를 쫙 덮어쓴 보컬과 빠른 영어 가사 등 일본의 남성 듀오 하바드(HARVARD)가 딱 떠오르는 곡이다. 하바드라니, 갑자기 이들의 높다란 학력이 떠올라 재미있다. 앨범 전체의 테마를 연주곡으로 들려준 'New Standard' 역시 본토 시부야 계 뮤직보다 더욱 시부야스러운 섬세한 접근이 돋보인다. 퇴근 버스의 쓸쓸함을 그렸다는 '불면증의 버스' 또한 노셀의 심약한 보컬에 후렴구의 '굿바이 굿바이'가 귓가에 남는 모던 락. 그 외에도 펑크 스타일의 '비밀의 밤', 장난기 가득한 스캣송 'We Are Mad About Flumerides', 아랍 음계를 사용한 일렉트로니카 'Arabian Night' 등등 가끔은 얼얼하도록 정신을 빼놓는 즐거운 시도가 가득한 트랙들이 이어진다.
확실히 1집과는 다른 느낌의 경쾌함을 들려주고 있는 앨범. 1집 때가 삶은 야채로 조리한 병원식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생야채가 듬뿍 들어간 약간은 거친 회복식? (굳이 치료음악이라 하시니까;) 1집 때의 그 쭉쭉 넘어가던 말캉함이 아직 그립긴 하지만 이번 2집의 식감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씹을 수록 맛있다. 내 생각에 2집은 치료를 마치고 막 병원을 뛰쳐나와 어디든 달리고 싶은 마음, 무엇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상태를 위한 음악인 것 같다. 좀 더 스피디해지고 다채로운 악기가 들어간 페퍼톤스식 행진곡들. 아직 이 템포에 적응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다시 1집으로 돌아가 좀 더 위안을 받아도 좋을 듯. 순서가 무슨 상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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