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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듣고/m.net

[m.net/한장의명반] 정재형 3집 [For Jacqueline]

by 하와이안걸 2008. 4. 7.



9년차 파리지앵의 우울


정재형 3집 발매 인터뷰를 통해 얻어낸 한 줄의 문장. '예전의 과장된 슬픔을 걷어내고 수필처럼 단출하게 꾸미려 애쓴 미니멀한 일렉트로닉 팝!' 나를 낚아버린 모든 것이 들어있는 한 마디였다. 바꿔말하면 난 그가 해 온 음악에 그닥 관심이 없었던 것. 베이시스 시절, 서양 장례식에 와 앉은 듯 무거웠던 곡 분위기와 제 차례가 오면 더 크게 울어대는 보컬들도 내 취향과 거리가 멀었고. 그 이후 솔로 활동을 하면서 윤상, 이적, 김동률 등 '그 시절 오빠'들의 앨범과 라디오 게스트로 종종 등장했던 정재형. 그 친분만으로도 충분히 정이 싹틀 법 한데, 어떻게 된 일인지 쉬이 오빠라 부르기도 두려웠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건, 어린 시절 공감하기 힘들었던 고급스러운 우울함 때문이었을게다. 그런데,먼저 그 우울을 인정해 주신 것도 모자라 일렉트로니카라니! 게다가 그 뒤를 받쳐주는 세션에는 윤상의 일렉트로닉 유니트 모텟(mo;tet)의 멤버들이 있고 말이지 


첫 곡에 걸려있는 저 의외의 이름, 그러나 들어보면 너무도 적절했던 그녀와의 만남. 모델 장윤주와 함께 부른 '지붕 위의 고양이'는 살랑거리는 이 계절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곡이다. 이미 Sound Visual Book [CmKm]에서 자작곡 'Fly Away' 등을 선보이며 신은 공평하지 않음을 은근히 자랑한 그녀. 그 때도 정말 이런 보컬 누가 안 모셔가나 싶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곡을 만난 듯. 순수하고 깨끗하면서도 맥은 또 제대로 짚어주는 매력적인 보컬이 파스텔 여자 보컬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뒤를 오버하지 않고 받쳐주는 정재형의 나지막한 보컬도 멋지고. 곡 분위기며 가사며 살짝 토이남 되신 듯 하지만 거긴 강남이구 여긴 파리니까요! ^^ 원래는 M.NET [OFF THE REC. HYOLEE] 삽입용으로 이효리와 함께 불렀다 해서 연예가에서 막 출동하고 그러더니 결국 앨범에는 장윤주 버전만 실렸다. 보너스 트랙으로 넣어주지 왜! 하고 효리 버전 찾아 들어봤더니... ... 그건 그냥 효리씨와 우리만의 추억으로 남겨요.

 

이어지는 타이틀곡 'Running'은 헤어진 연인의 메시지를 뒤늦게 발견하고 그녀를 쫓아 죽어라 뛰는 남자의 안타까우면서도 벅찬 마음을 그렸다. 죽기 전에 겪어보기 힘들 것만 같은 영화 같은 설정에, 정말 심장이 뛰는 듯한 느낌을 전자음으로 살린 센스가 돋보인다. 덩달아 기대되는 뮤직비디오에서는 쿨한 성격에 착한 기럭지를 자랑하는 최지호와 이하나의 무한질주를 만끽할 수 있다. '인어를 품에 안다'는 가사만 보았을 때에는 인어를 하늘로 보낸 왕자의 이야기인 듯. 전공이 영화 음악이라 그런지 듣는 순간 영상이 절로 떠오르는 곡들이 많아졌다. 얕은 비트에 조심스레 풀어낸 이 슬픈 노래 또한 인어의 표정까지 상상할 수 있을 정도. 


 

그의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사랑은 이제 싫다'는 마치 윤상이 만진 듯한 일렉트로니카 장르의 곡이다저음으로 시작한 처음은 제법 신선하고 좋았으나, 짧은 호흡에도 어김없이 들어차 있는 잦은 바이브레이션이 NG. 이미 윤상을 떠올려버려서 그런가, 좀 더 무심하고 건조하게 불렀으면 어땠을까 싶고. 정인에게 꼭 어울리는 그루브한 출발이 좋은 곡 '일요일 오후'. 지플라 이후 처음 접하는 듯한 그녀의 참여가 반갑기는 하지만, 그 반가움마저 싹 달아나버리게 만드는 심심한 전개가 아쉽다. 1980년대의 학생운동을 소재로 한 '1988' (아마도) 작사가 박창학의 시점에서 바라본 시대의 아픔을 정재형의 목소리와 연주를 빌어 노래한 곡. , 이제는 좀 울어줘야 할텐데 나는 그가 말하는 어떠한 슬픔에도 공감할 수가 없다. 비싼 우울, 계급이 느껴지는 보컬이라 일찌감치 귀를 닫아버린 나의 편견 때문일 것이다.


 

그 외에도 정재형의 슬픔은 앨범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의 과거 음악에 깊이 공감했던 팬이라면 환영할 만한 트랙으로 '날개', '쟈클린', '사랑은 끝을 지나 처음으로' 등이다. 고급스럽게 흐느끼는 슬픔은 그대로, 거기에 살짝 뮤지컬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극적 연출이 가미되었다. 이 앨범을 맨 위에 언급한 문장으로 정리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 하다. 그냥 '9년 동안의 프랑스 유학 생활이 응축된 앨범'이라고 정리하는 것이 더 맞을 듯. 기본의 우울하고 클래식한 정서는 그대로 한 채 전공을 최대한 살려 스토리와 그림을 입혔고, 좋은 동료들을 만나 새로운 장르에 도전도 해 본 그런 앨범.그 뿐인가. 파리의 카페 소음, 그리고 이웃집 장 마리 부부와 쟈클린도 등장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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