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를 내두를 잔망스러움
페퍼톤스의 객원 보컬로서 'Ready, Get Set, Go!', 'April Funk' 등을 상큼하게 불러주신 뎁(deb)이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허밍어반스테레오, 요조를 지나오는 샤방한 여성 보컬의 인기 속에서 약간은 텀을 두고 발표하는, 그러면서도 페퍼톤스보다는 한 주 먼저 발표해 주시는 그 긴박한 타이밍에 주목할 수 밖에 없던 이번 앨범. 때마침 먼저 듣게 된 페퍼톤스 2집 'Drama'에서의 거친 보컬도 흥미로웠고, 파스텔의 그녀들과는 또 다른 그녀만의 목소리를 다시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거 뭐!매력적인 보컬리스트로도 모자라 직접 작사, 작곡, 편곡까지 해내는 프로듀서님? (가산점 팍팍!!) 게다가 부클릿에 찍힌 옆 얼굴도 좀 예쁘시네.아니, 요즘 왜 이렇게 어리고 잘난 분들이 많아! ㅠ_ㅠ
마치 어린이 뮤지컬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ScarS into StarS'은 오랫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다정한 악기 소리와 역시 가요에선 흔치 않은 삼박자 리듬이 재미있는 곡. 파악하기 힘든 주문과 같은 노랫말과 이를 캐취하고자 허우적대는 손짓을 가볍게 피하며 날아오르는 스카~스카~스카~의 반복. 그저 발음이 비슷할 뿐 그다지 관계없는 두 단어를 붙여 '상처=별'로 이어주는 그녀의 감성이 심상치 않다. 여기까지는 그저 그녀의 독특한 세계를 짐작할 수 있는 서곡이었다면, 두 번째 곡 'Golden Night' 은 신나는 뎁 표 멜로디와 보컬을 본격적으로 즐길 수 있는 트랙. 페퍼톤스 2집에서 그녀의 곡이 부족해서 아쉬웠다면, 또는 기대했던 뎁의 보컬이 아니었다면 이 곡에서 비로소 해갈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듯 하다.
뎁 자신을 소개하는 듯한 제목의 'Astro Girl'은 이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어쿠스틱한 악기들과 무공해 뎁의 목소리가 경쾌하게 맞아떨어진다. '생각도 못했었던 행운같은 예감', '언제 들어도 반가운 목소리의 노래'는 대중들이 느껴주길 바라는 뎁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그러나 이어지는 'Amazing Day'는 군데군데 페이지가 떨어진 동화책을 읽는 듯 알 수 없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탱고와 룸바 등 라틴 리듬을 과감하게 사용한 '일랑일랑'과 '도파민'은 그저 새로운 사운드만 있을 뿐이고, '야간개장' 역시 샤방함 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다. 너무 단어의 매력에만 심취한 나머지, 소통에는 신경쓰지 않은 듯 싶다.꽁꽁 숨겨둔 진심에 서운함을 느낀 건 나 뿐일까.ㅠ.ㅠ
'푸른 달 효과', '꽃'에서는 경쾌한 실험을 최대한 배제, 제법 심각한 밴드 사운드를 들려준다. 특히 '꽃'에서는 중량감 있는 락 사운드와 피아노의 조화가 인상적이며, 날카로운 매력으로 코팅된 코러스와 시와 같은 노랫말이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트랙. 그 외에도 브라스를 듬뿍 사용한 재즈풍의 트랙 '9세계'와 차갑게 찰랑거리는 키보드가 반복되는 '얼음성',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아코디온 소리를 뭉근하게 풀어주는 베이스 연주가 매력적인 '미로숲의 산책' 등 제목만 들어도 호기심 끓어오르는 트랙들이 그녀의 어여쁜 목소리를 타고 봄 타는 청춘들을 살랑살랑 유혹하고 있다.
앨범을 다 듣고나니왜 타이틀이 Parallel Moons 인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하나의 컨셉 안에서 흐름을 타던 다른 앨범들과는 달리, 종잡을 수 없는 저마다의 세계가 각 트랙마다 있으니 말이다. 좋으면서 당황스럽고 살짝 피곤한 이 느낌은 마치 말을 갓 배운 어린 조카와 빡세게 놀아준 그런 기분이랄까? (쉽게 말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ㅠ.ㅠ) 그러나 세상의 모든 조카들이 그렇듯 귀엽고, 신통하고, 미래를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어디 보통 조카님인가. 작곡도 하고 노래도 잘하고 단어를 저축할 만큼 싹싹한걸. 게다가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선배들도 많은 듯 하니, 그녀의 성장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마음을 어루만지는 노래도 부르게 되겠지. 기다릴테다. 그런 목소리로 꼭 한 번 위로받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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