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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눌러앉기/2004-2006, Japan

요리만이 희망이다-_-

by 하와이안걸 2005. 11. 30.
11월 30일. 맑음. 새벽근무.

오늘도 새벽 4시 31분발 첫차에 몸을 던졌다.
요즘은 화장은 커녕 세수도 겨우한다. 너무너무 춥다.
아, 겨울로 넘어가면서 새벽 근무가 정말 싫어지고 있다.
일어나는 것도 물론 괴롭지만, 옷 갈아입는게 특히 죽음이다.
기어이 어젯밤엔 유니폼 블라우스를 잠옷속에 입고자는 추태를 행하였다.
김짱이 피식 웃어서 살짝 부끄러웠으나 효과는 만점이었다.
다음에는 스타킹도 신고 자야지, 문을 나서며 흐뭇해하는 나였다;

오늘도 가운데 자리에 앉아서 잘 준비를 하는데 다음 역에서 케이코짱이 탔다.
살짝 몰라봐주길 바랐으나 한 눈에 알아보고;; 내 옆에 찰싹 붙어앉았다.
막상 또 이야기하면서 가니 시간도 빨리가고 잠도 달아나고 좋았다.
성격좋고 귀여운 케이코. 스물두살인데 그 넉살과 화통함이 장난아니다.
사원들을 씹어대는 그 말투에 그간의 서러움이 눈녹듯 사라지는듯 했다 ㅠ.ㅠ

몽롱한 상태로 매장에 들어서서 어찌어찌 오전시간을 버텨내고
2시 15분. 드디어 퇴근 시간이 되었다. 아침에 괴로워서 그렇지
남들보다 일찍 퇴근하는 기분이란. 이맛에 새벽근무를 내치질 못한다;
오늘도 사람들의 부러움을 가득받고 락커로 돌아가려는데
이시카와 아줌마가 날 붙잡는다. "만쥬 먹을래?"

아줌마는 시식용으로 들어온 만쥬 상자를 열어 그중 두개를 랩에 싸주었다.
신나서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숙이 언니가 날 노려보고 있었다. 움찔;;;

'언니것도 달라할까?'
'-_-+'
'왜에~'
'살쪄!'

내가 본 가장 살벌한 입모양이었다. 입에서 불이 나오는듯 했다. ㅠ.ㅠ
그러나 난 주머니에 만쥬를 쏙 넣어갖고는 도망치듯 락커로 올라갔다.
오늘은 김짱이 김밥을 하는 날. 다들 한요리 하는 사람들이 다니는 학교건만
그 중에서도 스시집에서 알바하는 김짱의 손맛은 남달리 유명한 모양이었다.
김짱이 오기전에 당근과 양파를 썰어 볶아놓았다. 나는 잡채를 하기로 했다.

드디어 김짱이 귀가를 하여, 둘은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하였다.
둘다 손이 빠른 편이어서 그 손많이 가는 요리임에도 후다다닥 준비를 끝내었다.
이제 김짱은 말기만 하면 되고 나는 무치기만 하면 되는 상태.

"언니. 우리 돌아가서 김밥 장사해도 되겠다."
"응. 니가 가게 얻어서 날 써라."
"돈 없어. 언니."
"그럼 아침에 지하철 역에서라도 팔자. 선그라스끼고."
"좋아!!!"

우리의 맹세는 수랏간 최고상궁이 되자던 장금과 연생의 그것에 지지않았다.
매우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꼭 날 써줘. 김짱. (난 알아. 가게 낼 수 있다는걸.)
나의 잡채는 재료가 더해갈수록 반짝반짝 빛이 났다.
맛을 본 김짱은 내 어깨를 퍽퍽 치며 "맛있어 맛있어"를 연발했다.
어깨의 통증으로 보아 진짜인듯 했다. 아팠지만 매우 기뻤다.

김짱은 김밥 하나만 하는게 아니었다. 아보카도와 연어가 들어간 캘리포니아롤과
닭가슴살과 새우가 들어간 하루마키도 만들 작정이었던 것이다.
난 재빨리 손을 털고 하루마키에 뿌려먹을 땅콩을 다져주었다.
티비에서는 히트싱글 대상인가 뭔가를 하고 있었다.
우리 보아가 또 섹시하게 춤을 추며 완벽한 라이브를 보여주었고,
올한해 좀 자주 들렸다 싶은 노래들이 계속 라이브로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 음악을 배경으로 갓 만든 김밥과 잡채를 주워먹으며 뒷북을 치기시작했다.

"삼성 딸이 죽었다더라."
"신정환이 도박으로 잡혀갔대매?"
"문희준이 군대갔는데 팬이 이천명이나 왔대."
"아냐. 삼천명이래!"
"아, 그래에?"

역시 나 먹자고 하는 요리는 즐겁다. 그리고 혼자가 아닐수록 더더욱.
게다가 오늘은 팔아도 될 맛임을 서로 확인하고는 더더욱 흐뭇해했다.







이젠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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