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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고/그냥

[펀치라이팅 3주차] 천장

by 하와이안걸 2015. 5. 28.

김봉현의 펀치라이팅 2기

3주차 과제 - 에세이




천장


지금 살고 있는 집 안방 천장에는 검은 얼룩이 하나 있는데 볼 때마다 모기인가 싶어서 늘 놀라곤 한다. 그렇게 처음 바라보기 시작한 천장에는 무난한 흰색 벽지가 발라져 있었는데, 여기에 아주 옅게 물결 무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멍하니 천장 벽지를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잠은 깼지만 일어나기 싫은 아침, 가만히 누운 채로 천장의 물결을 따라가다가 회사에 지각한 적도 있었다. 아파서 결석하는 것이 소원이었던 튼튼한 어린이의 꿈은 커서도 이루어지지 않는 듯 했다. 
 
3년 전, 처음 찾아간 병원 수술실의 천장은 연한 녹색이었다. 중학교 때 처음 나온 모닝글로리 노트의 민트색 속표지가 생각났다. 분명히 같은 이유라고 생각했다. 환자의 시선을 배려한 전문가의 결정이라 믿으니 마음이 한결 좋아졌다. 이모뻘 되는 듯한 의사는 수술실에 들어오자 마자 울 일도 많다며 핀잔을 주었다. 발치에서 등장했는데도 내 기분을 알아차리다니 혼자 감격하고 말았다. 하지만 오늘 하루만 푹 쉬면 일상생활을 해도 된다는 그 다음 말은 온기가 있었음에도 전혀 반갑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멀쩡하게 출근을 했다.


이번에는 흰색 천장이었다. 괜히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 의사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자 맨 다리가 시려왔다. 나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높이 솟은 내 무릎에 각질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마취 없는 시술 과정은 도통 익숙해지지 않았고, 의사는 하체에 힘을 빼라며 수면양말에 싸인 발목을 톡톡 두드렸다. 발과 의사의 얼굴은 가까웠고, 잠시 액션 배우가 되는 상상을 했다. 다시 눈을 돌려 천장에 붙은 조명의 개수를 헤아렸다. 시술이 끝나자 그는 수고했다며 악수하듯 발을 잡고 흔들었다. 재미있는 양반이라고 생각했다.


온갖 동물들이 꿈에 차례로 나왔다. 뭔가 두 마리 이상 나올 때는 남편과 아침부터 회의를 했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더욱 몰입했다. 하지만 이내 죄송하다는 인사와 함께 남은 개체를 냉동보관하겠냐는 연락이 왔다. 영화 '아일랜드'의 장면들이 스쳐갔다. 냉동실의 모습이 영안실과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한동안 냉동실에 보관한 고기를 꺼내지 못했다. 오랜만에 맥주 한 캔을 천천히 나누어 마셨다. 


육아로 힘들어하는 친구를 가여워하고, 임신한 친구에게는 노산의 희망이라는 이상한 칭찬을 했다. 아이가 없어도 된다는 친구들의 위로를 당연히 진심이라고 받아들였다. 별 고민 없이 여행을 떠날 때나 집안 일로 크게 싸울 때 아이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씨가 되었다. 분명히 어딘가에서 듣고 서운해 했을 것이다. 만약 꿈에서 만난다면 어디까지 왔었는지 묻고 싶다. 나의 방은 지낼만 했는지, 어떤 벽지를 좋아하는지도 물어보겠다. 다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저 검은 얼룩이 차라리 죽은 모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평가 : 좋은 에세이지만 너무 감추어져 있는 것이 많다. 조금만 더 힌트를 주면 좋을 것 같다. 예문으로 쓰고 싶은 좋은 표현이 많았다.



올 초 수술에 실패하고 문득 들었던 생각을 메모해 두었는데 여기에 쓰게될 줄이야.

그때 생각났던 말은 다름 아닌 노리플라이의 '노래할게'의 가사였다.


'어디쯤에 멈춰섰을까'


무심코 듣고 넘겼던 이 부분이 남다르게 들리는 거다.

그 노래에서 출발했던 많은 생각들을 언젠가는 글로 정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외부에 노출시킬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뭐. 안될 건 없지 않을까.





이젠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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