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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고/그냥

수리수리 올수리 1화 : 철거의 세계

by 하와이안걸 2016. 11. 7.


지난 여름...

철썩같이 자신했던 이삿날 맞추기에 보기 좋게 실패하고

열흘이라는 공백이 생기고 말았다.


그때 내 머리를 스쳐가던 한 단어...



★☆★☆ 올 수 리 ☆★☆★



부동산 사이트에서 수도 없이 봤던 그 단어!

이건 어쩌면 내 인생 최초의 올수리의 기회가 아닐까 생각했다.

어차피 추가 대출도 뼈가 튀어나올 만큼 더 해야하니

내 생애 첫 집에, 내 생애 첫 인테리어를 해 보기로 했다.




원래는 도배만 하기로 했었다. (정말이어요.)

그런데 시간이 생기니 욕조와 변기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계약 후에 제대로 집을 살펴보니 

무너질 것 같은 싱크대 상부장에;;;

멀쩡해 보였던 마룻바닥에도 기스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바닥과 천정, 등박스, 창문 등에 자리 잡은

온갖 체리색 프레임들...



그래. 바꾸어 보자. 못할 것도 없다.

저렴한 단가로 내 혼을 쏙 빼놓았던 모 인테리어 업체에 다시 찾아가 가계약을 맺었다.

나의 담당자 분은 그 안에서 가장 나이가 지긋하신 형님. 

편하게 반장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일사천리로 견적서가 오가고 일정이 착착 잡히고...

떨리는 마음으로 수리수리 올수리의 첫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1. 싱크대 철거

나사 하나만 풀어도 후두둑 떨어지는 상부장

"침니후드를 달 수 없겠는데요." (털썩ㅠㅠ)

거실을 더 좁게 만들었던 수납장도 철거


쿨내 나는 벽 낙서


싱크대 철거는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했다.

몇 군데를 살살 풀어주기만 했는데도 상부장이 사부작, 후드가 후두둑 무너져 내렸다.

싱크대 벽타일도 오래된 건지 부실한 건지

철거와 함께 비처럼 쏟아져 내려 깜짝 놀랐다;;;




철거팀 아저씨들이 복잡한 이내 마음 읽으셨는지  

지금 싱크대의 문제점을 쉼 없이 랩으로 뱉어내셨다.

자재가 조잡하기 이를 데 없다, 타일도 허술하게 붙어있다, 언제라도 철거를 해야만 했다...



네. 좋습니다. 다 좋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이번 참에 상부장을 없애고 침니 후드라는 걸 달고 싶었거든요. ㅠㅠ

너무 고급진 예라 얼척없지만




사요나라 ㅠㅠ


출처 : 에그트리님의 블로그 http://eggtreekids.com



뭐... 요런 부엌 한 번 가져보나 살짝 꿈꿔 봤으나... 

사진을 보신 반장님 및 철거팀 전원이 말리셨다.



아니, 그릇은 어디에 두려고! (선반이요...)

기름이랑 먼지 붙는 건 어쩔 건데! 

상부장이 그거 다 커버해 주는 건데! 

저런 집은 사진 찍으려고 만든 집이고! (그건 아닙니다. 선생님...)



게다가 우리집 후드 자리가 길이가 짧아서 

하츠 침니후드는 아예 설치 자체가 안된다 하셨다. (털썩...)


(안녕... 침니 후드여...)




대신 상부장을 짧게, 최대한 위로 붙여주겠다는 약조를 받고

순순히 그들의 조언에 따르기로 했다. 



결론적으로는? 대체로 만족한다. 

식기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지만 은근히 컵과 술잔 등이 많은 우리집이었다;;;;;;



그래. 상부장이 없었다면 분명 좁았을 거야.


ㄱ자 구조도, 11자 구조도 나오기 힘들었잖아!


기존 수납장을 뽑아낸 자리



다만 아쉬운 것은 

싱크대를 더 길게 뽑을 수 있었음에도 뽑지 못한 것.

사진의 저 윗부분에서 딱 끊어진 것이다.



사실 싱크대를 벽 끝까지 길게 뽑아내려면 

저 굽은 공간에 가벽을 세워야 하고 이는 목공 작업으로 이어진다.

싱크대 길이도 3미터로 늘어나면서 

상, 하부장 각각에 모두 초과 금액 발생하고.




처음 만난 순간부터 최저가~♬ 최저가~♪ 노래를 불렀던 나였기에;;;

반장님도 그 부분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던 것 같고 (이해합니다 ㅠㅠ)

목공사까지 들어가면 일정이 더 빠듯해진다고 하여 그냥 넘어갔다.




대신 저 안에 움푹 파인 부분, 

가로 60, 세로 90의 공간에 무언가를 채우면 되지!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리고 저 사이즈의 가전이 제법 있어서 (식기세척기, 김치냉장고, 전기건조기 등) 

새로 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기분 좋았던 것 같다. 

(저기요. 아줌마.. 돈은 ㅋㅋ)





그렇게 꿈에 그렸던 주방과 멀어지면서

상부장 없는 주방을 꿈꾸며 버리고 비워냈던 수고들이 아까워졌다.

이렇듯 무작정 짐을 줄이는 준비가 아닌 

실측과 계획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 주인이 귀찮아 하는 거 눈치 보지 말고

계속 찾아가서 꼼꼼히 실측하고 연구하는 것이 최고! 



전 주인이 버리고 간 장식장 세트

음. 티비장 가운데만 쏙 가져가신 전 주인.

어디 가구 뿐인가. 음식물 쓰레기도 반만 채운 봉투를 그대로 두고 가셔서 식겁했다. 

더 채워서 버리라는 뜻이었나;;;




저렇게 버려진 가구가 있을 때에는

싱크대 철거팀에 부탁하면 수거해 가신다.

그런데... 그땐 몰랐다. ㅠ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싱크대 팀이야 싱크대만 수거해 가면 되니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반장님이라면...

한 번 물어봐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결국 스티커를 사서 붙이고 ㅠㅠ 

바깥에 내놓는 건 다음에 오신 바닥 철거 팀에게 부탁드렸다.




2. 바닥 철거

두둥두둥~ 마루 철거왕 등장!

마루를 이렇게 조사;;주는 기계입니다.

조각난 마루는 착착 담아버리고

먼지도 위잉위잉

체리색 걸레받이 뜯는 것도 속시원


싱크대 팀이 그렇게 떠나고 이제는 바닥 철거 타임!

원래 있던 거실 마루에 기스가 많았고, 

방방마다 바닥재가 모두 달랐다. (합판, 비닐장판, 기름먹인 종이 등)

이참에 마루와 장판을 다 벗겨내고 문턱도 없애기로 했다.



형제 지간인 젊은 청년 두 분이 오셔서 뚝딱뚝딱 하고 가시는데 내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지를 많이 마신다는 (다소 치명적인) 단점이 있긴 하지만

불황 없이 계속해서 바빠질 사업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돈도 돈이지만, 젊은 나이에 기술을 가지고 자기 사업을 한다는 것이 가장 부러웠다.




그날도 다섯 탕을 뛰고 오셨다는 이분들은

넉살 좋게 이 집 얼마에 샀냐고 묻는다.

어차피 계약 한 집이고, 마루도 매끈하게 갈아야 하니 

나도 모르게 넙죽넙죽 대답하고 있다. ㅋㅋㅋ




싸게 잘 샀다는 립서비스와 함께 옆 동네 같은 평수 시세도 슬쩍 알려주었다.

말 한마디만 잘 해도 주변 시세를 쉽게 알 수 있고, 

다니는 집집마다 구조와 마감재들도 파악이 가능하니

훗날 재테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미 청년 재벌일 것 같지만... ㅠㅠ



시멘트 바닥이 희끗희끗 보이기 시작하면

바닥을 평평하게 갈아줍니다. (샌딩)

아악! 내 눈에 흙이 들어옵니다 ㅠㅠ

여기는 어디? 말끔해진 부엌!


기계 하나로 마루를 뜯고 갈아서 

매끈한 상태로 만드는 모습이 신기했다.



엄청 시끄럽고 먼지가 많이 나서 

베란다에서 벌 서듯이 구경했지만

말끔해진 맨바닥을 보니 속이 시원했다.



오후 내내 먼지와 소음 속에서 생소한 철거 작업들을 지켜보니

직업에 대해, 사는 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6시가 되어 모두 해산을 하는데

저 멀리 청년 재벌님들이 경비 아저씨에게 혼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는 (내가 부탁한) 스티커 붙은 폐가구 두 점...




눈치를 보아하니 대형 쓰레기는 다른 요일에 내놓는 듯...

마스크를 고쳐 쓰고 뒷길로 도망쳤다.

미안합니다...










이젠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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