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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고/그냥

수리수리 올수리 5화 : 조명을 사러간 사이

by 하와이안걸 2016. 11. 23.

첫 주말이 다가왔다.

모처럼의 휴일이라 조명을 사러 을지로에 가기로 했다.



먼저 현재의 조명 상태를 살펴보자.


셋 중 하나만 불이 들어오는 거실등

확장한 방에 남아있는 베란다 전용등

이보다 더 비상일 수 없는 비상등

의미 없는 뒷 베란다의 벽등



전셋집 살 때는 전구 하나도 세일하는 것만 사고

조명이라는 것 자체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꾸미려고 보니 벽지만큼 거슬리는게 조명이었다.



반장님께서 매우 좋은 가격으로 모든 조명을 LED로 바꿔준다고 해서

큰 욕심 안 부리고 순리대로 따르려 했으나

샘플로 보여주신 것들이 죄다 별로였다. ;;;



그냥 깔끔하기만 하면 되는 데 어쩜 그런 게 하나도 없을까.

디오스 가전에서 그대로 가져온 듯한 큼직한 꽃무늬 디테일도 많았다.

저작권 괜찮나요. 



다른 전단 이미지를 통해 엣지평판등을 찾았다.





"저기, 엣지평판등이라는 것이 있던데 그걸로 해 주시면 안될까요?"


그러나 그 가격에 맞추려면 방 두 개는 포기해야 한다고.

콜!!!

안그래도 한 두 곳 정도는 직접 고른 조명을 달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솔직히 잘됐다는 마음도 있었다.


을지로 단골집에서 백숙백반으로 전열을 갖추고


남편의 소개로 찾아간 충무로 사랑방칼국수에서 

인당 8천원!!!! 짜리 백숙정식을 시켜 국물까지 알차게 먹었다. 

아, 감동 ㅠㅠ

LCHF를 실천하는 자로서 닭껍질까지 야무지게 섭취해 주고

한 냄비씩 나오는 닭국물까지 벌컥벌컥 마시다 보니 어느 새

주인 할아버지의 나를 향한 애정어린 눈길이 느껴졌다.




식사 막판에 이모님께 김치를 아주 조금만 더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김치를 담는 이모님께 할아버지가 크게 외치셨다.




"많이 드려!!! 다 드실 분들이야!"



(부끄)



을지로 4가 세운대림상가에 주차를 하고

블로그를 통해 미리 알아본 몇몇 가게를 둘러보았다.

어떤 가게는 친절하고, 어떤 가게는 정말 무뚝뚝하고 그랬다.

나는 아무래도 초보자다 보니 질문할 것도 많아서

가장 친절하게 설명해주신 가게에 봇짐을 풀었다.




무난하고 깔끔한 거실등과 함께 확장된 방 끝에 추가할 무드등을 골랐다.

조명 가게들 거의 다 사진 촬영 금지여서 사진은 남기지 않았는데

얼마 후 등을 달 때, 원래 모습 사진이 있어야 한다기에 연락해서 사진을 받았다.



회색톤 우리집의 유일한 금동이!





빠른 판단과 총알 입금으로 후다닥 가게를 나왔으나 

주차비 생각보다 많이 나와서 안 깎았주셨으면 눈물났을 뻔 ㅠㅠ

그리고 거실등이 생각보다 커서 차에 싣느라 꾸깃꾸깃 고생. 뺄 때도 고생.

이래서 다들 택배로 받는 군요 ㅠㅠ



현장에 툭!



현장에 도착하자 이른 저녁이 되어있었다.

남편은 수리중인 집을 처음 보는지라 무척 기대에 찬 상태였다.

원래 오늘은 쉬는 날인데도 다들 나오셔서 

욕실 공사를 마무리하셨다 하니 나 역시 기대 만발~




집안에 도착해 보니, 

다음 주 마루 공사를 위해 짐들이 모두 베란다로 옮겨져 있었다.

베란다 타일은 이제 다 말랐다는 건데...

그런데...

가장 기대했던 욕실이 묘하게 어색하다.




심하게 작은 변기와 어정쩡한 선반 높이


원래 달기로 한 변기는 어쩐 일인지 베란다에


욕조랑 타일 선이 안맞는 것도 거슬리고


욕조 손잡이는 왜 머리쪽에 달려있는가 ㅠㅠ


휴지걸이는 내 눈에만 비스듬한가 ㅠㅠ



입이 떡 벌어지게 놀랄 준비를 하던 남편은

생각보다 우와~~~할 게 너무 없어서 당황한 눈치였다.

당황스러운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타일에 도기를 얹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이상해질 수 있다니!

그리고 수평과 같이 성의가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속이 터질 것 같았다.

매번 맥주를 사다 나르던 일이 생각나 더욱 속상해졌다.




세면대와 수납장을 최대한 높게 달아달라고 했는데

젠다이 선반은 그대로 머물러 있다보니 

세면대 사이에 틈이 없어진 것 같았다.

아, 보기도 이상하고 청소하기도 불편하게 생겼다. ㅠㅠ






저 멀리 보이는 안방 욕실은


그나마 무난하게 완성



24평에 화장실이 두 개라...

불필요하다는 생각에 드레스룸으로 바꿀까, 건식 화장실로 공사할까 고민했으나

그래도 식구 많은 집은 욕실 2개를 선호하기 때문에 

나중에 집 팔 때 불리할 수도 있다는 말에 바로 설득 당했다;;;

마지막까지 건식 화장실에 미련이 남았으나

바닥을 평평하게 하는 공사비와 수납 세면대까지 20만원이 추가된다고 해서 포기했고.

그냥 무광 타일 바닥에 푹신한 러그를 깔아 자체 건식'화' 하기로 했다.





그런데 수전을 샤워기 겸용으로 자꾸 권하시는 거다.

건식을 지향하는 나였기에 질색팔색을 했으나

손님 올 때도 생각해야 하고 (웬 샤워 손님)

무엇보다 바닥 청소하려면 샤워기까지 있는 편이 나을 거라는 반장님 말에 다시 설득.

아, 이런 것이 삶의 연륜인가! 감탄하고 

앞으로 노련한 반장님만 믿고 가리라 다짐했건만...





실망스러움에 문자를 남겼고 긴 통화를 통해 

기존에 사온 변기로는 문이 닫히지 않는다는 비보를 접했다. ㅠㅠ

그래서 나름 급하게 작은 걸로 사와서 단 것이라고.

자기 나름대로는 빠르게 대처를 한 것인데 

감사 인사는 커녕 정색하고 따지니 놀라신 듯 했다.




그런 결정을 혼자 하시면 어떡하냐고, 

비데랑도 안 맞고, 우리 덩치랑도 안맞는다고,

문을 반대로 열어서라도 기존 변기를 쓰겠다고 우겼다.

반장님은 문 공사를 새로 하는 것은 반대고, 

다른 변기를 새로 사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끊으셨다.

자기가 괜한 짓을 해서 아까운 변기만 두 개 날려먹었다는 

영감님 스타일의 넋두리도 함께...

그럼 처음부터 실측을 하고 도기를 사러 가셨어야죠;;;





사실 올수리의 시작은 욕실 리모델링이었다.

꿈에 그리던 미니멀한 욕실을 꾸며보자는 계획에서 시작되어

부실한 싱크대 교체로 이어지고 어찌어찌 올수리까지 오게된 것이다.

이렇듯 시작은 욕실이었고, 

가장 큰 돈이 든 곳도, 가장 기대하는 곳도 욕실이었는데

너무 실망스럽게 완성이 되니 머리에서 김이 펄펄 나는 것만 같았다.

레테를 그렇게 뒤져봤는데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싶고 ㅠㅠ





근처에 사는 작은 오빠와 저녁을 먹으며 상의했더니

정의의 수호신인 새언니 찬스를 써 보라며 조언해 주었다.

과연 나는 커피셔틀 호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ㅠㅠ







이젠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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