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벌써 이사 전날이 되었다.
이제서야 뭘 물어봐야 하는지, 뭘 부탁해야 하는지 알겠는데 ㅠㅠ
내일 짐이 들어오다니... ㅠㅠ
일정이 빡빡해서 이사 전날 도배와 함께 조명과 스위치를 교체하고
이삿날 오전에 입주 청소를 하기로 했다.
오늘은 아빠 병원에도 가 봐야해서 오전에만 잠깐 들르기로 했다.
반장님으로부터는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문자만 받았을 뿐 현장에서는 뵙지 못하였다.
지난 주 토요일부터 5일 째 문자로만 연락을 주고받는 중.
솔직히 불안하기도 했지만 나도 아직 잔금 전이니 너무 속끓이지 않기로.
도배와 함께 다시 복닥거리는 거실
남은 벽지를 박박 뜯어요!
꽃무늬 뒤에 꽃무늬 뒤에 꽃무늬
동네 맛집을 물어보시는데 저도 잘 ㅠㅠ
친절하신 도배 부부님께 이런 저런 부탁을 드렸는데
아이고 뭘 그런 당연한 걸 말씀하시냐는 환한 미소에 느닷없이 감동 ㅠㅠ
반장님만 믿고 커피만 사다드리는 게 아니라
이렇게 실무자와 초짜 질문이라도 하면서 대화를 해야하는구나 뼈저리게 반성.
다섯 시 퇴근을 목표로 하신다는 말에 빠르게 병원부터 다녀오기로 했다.
현장에 다시 오니 다섯 시 반.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아무도 안계시겠지 하고 들어갔더니
조명 담당 사장님께서 베란다에 쌓인 박스를 혼자 치우고 계셨다.
무드등을 달았는데 컴퓨터방 ㅋㅋㅋ
도배와 함께 비상등도 새 것으로 변경
"내일 입주하시는데... 바뀐 집이 마음에 드시나요?"
"아... 네..."
"고객분들 피드백을 들어야 저희도 도움이 되거든요."
"반장님 회사 소속이신가요?"
"네. 그런 셈이지요."
"아... 그게요... 사실..."
장문의 메일을 말로 풀어가며 설명을 해 드렸고
시정이 되지 않을까봐 불안하다 했더니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재공사는 당연하다며 걱정 말라고 하셨다.
너무 웃긴 것이 이분도 처음에는
'처음에 확실히 말한 것 맞냐'
'사용에 불편이 없으면 하자로 보기 애매할 수 있다' 등등
업자 편을 들어가며 조심스럽게 대응해 주시더니
현장에 널려진 증거들을 보고는 같이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아홉 가지 요청했는데 절반 정도 들어주실 것 같다는 나의 말에
그럼 고쳐야 할 부분을 스무 개로 늘리면 다 처리되지 않겠냐며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이상한 부분을 마구 덧붙여주셨다.
(아악! 고통!!!!! ㅋㅋㅋㅋㅋ)
그래도, 갑작스러운 인터뷰를 통해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다.
예리하게 이곳 저것 짚어주시고,
뭐가 원인인지 명쾌하게 알려주시는 것을 보면
이분도 프로이신 것 같은데
싱크대 서랍에 대한 불만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집안 일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모른다.
무엇이 불편한 지, 무엇이 필요한 지.
유저 입장에서 이것저것 살펴서 더 좋은 방안을 제시해 주어야 하는데
그럼 사람은 너무나 드물고,
심지어 미리 언질을 주어도 빼먹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가가 낮아지면
중간 역할의 디테일도 같이 떨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자재와 액세서리를 직접 고른다해도 말이다.
화장실 자재를 빼고는 팸플릿을 보며 하나씩 직접 골랐다.
모르는 국산 브랜드가 이렇게 많은 지 처음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사진을 보고 직접 골라도
공장에 재고가 없다는 이유로 대체품이 (이미) 시공되어 있고,
어떠한 모양으로 어떻게 구현이 될 지
포트폴리오도, 시뮬레이션도 너무 부족했다.
수퍼 '을' 기획자로 살아오면서
온갖 경우의 수를 가늠하던 나에게 너무 낯선 경험이었다.
이 큰 돈이 오가는 세계에 사용자 경험 따위는 없었다.
그래서 튼튼하지만 불편한 싱크대가 내게 왔고,
코너 선반 대신에 요청한 욕조 손잡이는 이상한 위치에 붙어버렸다.
짝이 맞지 않는 세면기 수전과 욕조 수전은 양반이고
필요없다고 누누히 말한 양치 컵걸이는 안방 욕실에 떡 하니 붙어있다.
수많은 인테리어 후기의 마지막은 꼭 이렇다.
다시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다고.
나 역시 그렇게 이야기를 맺게 되었다. ㅠㅠ
이 집에서 당분간 이사할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다시 올수리의 기회가 온다면
이번에는 용감하게 셀프 인테리어에 도전할 것이다.
모든 공정을 팔 걷고 나설 수는 없겠지만
총감독만이라도 직접 할 수 있도록 담력과 안목을 키워야겠다.
내 사랑 MUJI 책상을 마지막으로 판매하고
내일 아침을 준비하고 마지막 설거지 완료
그래도 다 끝났다는 안도감이 함께했다.
짐이 들어오면 좋아질지도 모른다는 묘한 기대감도 함께.
그동안 수고했어. 등촌댁.
이젠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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