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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듣고/m.net

[m.net/한장의명반] 에픽하이 5집 [Pieces, Part One]

by 하와이안걸 2008. 4. 22.



조각난 마음에 평화를


슬쩍 타이틀을 듣고는 다시 평화를 노래하나 싶었는데 조각이다. 그러나 스펠링에 상관없이 peace도 조금은 들어있겠지 우기고 싶었으나, 목적없이 슬퍼하는 곡들이 발견되고 심지어는 쌓이기 시작. 보도자료를 확인한 후에야 piece piece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부서진 심장의 여러 조각들을 음악으로 표현했다는 이번 5. 첫 트랙 'Be'에서 들리는 타블로의 헐거운 보컬과 해탈한 듯한 노랫말 만으로도 공허한 아픔이 느껴진다. 다음곡 'Breakdown'은 에픽하이의 센 힙합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필청 트랙으로 4집의 flow, fan과 같이 마지막에 다 같이 부르짖는 랩이 특히 멋지다. 리믹스 버전 'B-Side 01 : Breakdown' (Supreme mix)에서는 타블로의 화려한 영어랩을 확인할 수 있다.

 

아기 울음소리와 시계 초침소리로 슬픔과 불안감을 주는 '서울, 1:13 AM'이 지나면 그 초침이 빨라지면서 타이틀곡 'One'으로 이어진다. 80년대의 신디 사운드를 트렌드에 맞게 일렉트로닉&힙합으로 재해석한 이 곡은 이제 솔로가수로서 그들과 한솥밥을 먹게된 지선이 보컬을 맡았다. 상처와 흉터가 있어도 내게는 여전히 아름답다는 타블로의 위로가 이 앨범에서 말하고 싶은 단 '하나'의 메시지인 듯. 그러다가 다시 'Time is ticking'을 외치며 장난스럽게 분위기를 전환하는데, 이 구절은 라이브 무대에서 팬들과 함께 멋진 시너지 효과를 낼 듯 하다. 이 곡 역시 'B-Side 02 : One' (Planet Shiver Remix) 으로 또 한 번 들을 수 있다. 지선의 보컬을 맨 뒤로 빼고 Faith, Destiny, Love 세 마디를 강조한 클럽 리믹스 버전쯤 되겠다. 클럽에서 그냥 틀어도 좋을만큼 비트가 촘촘하다.


 

'연필깎이'를 듣는 순간 ', 이것이 에픽하이였지!' 하는 반가움과 편안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과격하지 않은 적당한 리듬에 세상을 향한 어두운 가사, 마치 4집에서부터 대가 끊긴 Lesson 시리즈의 연장이라 생각하고 싶다. 미쓰라진의 부드러운 라임과, 스피디하고 정확해진 전달력! 보컬에만 신경쓰는 타블로는 장성한 동생 미쓰라를 자랑스레 앞세우기 위함인 듯 싶다. 이렇듯 세련된 미쓰라진의 랩은 앨범 전체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날카롭고 차가운 신디음에 불같이 뜨거운 성가대 스타일의 코러스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The Future'. 힙합씬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충을 강하게 표현하다보니, 또 어쩔 수 없이 십장생도 등장하시고 뭐 그렇다. 특히 함께 랩을 한 TBNY Yankie 목소가 너무나 매력적이다. (자꾸 듣고싶어지는 욕톤;) 이 두 곡으로 에픽하이에게 기대했던 센 음악에 대한 허기가 채워졌다.

 

이번 앨범에서는 지난번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진 보컬 피처링이 눈에 띈다. 그 중에서도 기대만큼 실망도 큰 트랙이 바로 나윤권과 함께한 'Ignition'. 차세대 발라드 귀공자로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있는 그에게 이러한 야생은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차라리 'Girl'에서 제대로 필 받아 불러준 진보가 훨씬 어울린다. 개인적으로 남자 보컬 피처링으로는 김연우와 함께 한 2집의 'My Ghetto' 가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윤하가 참여한 '우산'은 방송 활동을 기대할 수 없는 작은 소품에 불과하지만 그 풋풋한 어울림에 팬이 아니어도 즐겨 찾을 듯한 느낌. 그리고 그의 동료들 Dynamic Duo, Dok2, Double K, TBNY가 함께한 'Eight By Eight'. 왁자지껄해도 역시 프로인 그들의 흥에 겨운 랩이 앨범의 완성도를 높인다. () 들었어, () , 넌 아마추워(아마추어) 등 재미있는 표현들이 가득하다. 누구에 대한 분노인지 감이 잘 안잡힐 뿐.


 

이번 앨범에서도 역시 곡 사이사이에 Short Piece 라는 이름으로 interlude 트랙들이 있다. 처음엔 그냥 지나치며 들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의미심장하다. 특히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던 'The Future' 앞에 있던 'Slave'와 꿈에 대한 두려움을 노래한 '낙화' 앞의 'Icarus Walks'가 그러하다. 계속되는 통신 신호음이 들리는 '20 Fingers'에서는 왠지 자판을 치는 손가락이 연상되는데, 그렇게 되면 의미 파악이 어렵던 'Decalcomanie' 'Ignition'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진다. 악플러를 생산하는 컴퓨터 자판이 아닌 에픽하이를 통해 구원을 바라는 팬들의 유일한 통로인 것처럼. 이러한 작은 단편들이 곡 사이사이를 메우며 진정한 epic 을 만들어내듯, 그들을 향한 조각난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 치유의 음악으로 되돌아온 것이겠지. 이제 그들의 앨범에 대해서는 기대도 실망도 없다. 그저 미치도록 궁금할 뿐. 그리고 마음을 다친 한 사람으로서 부디 Part Two 로의 여정이 멀고 험난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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