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기다렸던 영화였어요!시즌 1부터 6까지, 온스타일에서 보여주면 보여주는대로 족족 다 봤더니,다음에 나오는 대사를 척척 맞힐 정도가 되었지요. (심지어 짧은 건 영어로도 맞혔어요.언빌리버블!) 그리고 영화화된다는 반가운 소식. 각종 관련 기사들을 힘겹게 외면한채 개봉날만 기다렸지요. 그리고, 달려가 보고왔습니다.
암을 이긴 듯한 사만다와 입양한 아이를 예쁘게 키운 샬롯, 그리고 여전히 자주 뭉치고 아낌없이 지르는 언니들이 꺄악! 두 팔 벌리며 웃고 있는데, 전 왜 이리도 마음이 무거웠을까요? 처음에 저는 그 안에서 제 이야기를 보았기 때문인 줄 알았어요. 몇몇 대사들에 뜨끔하긴 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걸 오늘 새벽에야 알았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시즌 6을 가장 좋아했어요. 제가 바라는, 가장 완벽한 해피엔딩이었기 때문이죠. 사만다에게는 정착을, 샬롯에게는 아기를, 미란다에게는 가족을, 그리고 캐리에게는 빅을. (사랑이 아닌 '빅'을!) 이렇듯 각자에게 결여된 부분이 완벽하게 짝을 맞춘데다, 캐리는 뉴욕의 모든 것을 다시 얻게 되었죠. 제게도 약간의 샬롯 기질이 있었나 봅니다. 이렇게 다 행복해진 결말에 마음이 꽉 차버리니 말이에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여기에 다시 흠집을 냈으니 좋았을리 없지요. 시즌 6의 결말로도 충분히 행복했기에, 더 이상의 갈등과 화해가 불편했던 겁니다. 그럼 이 영화를 그토록 기다린 마음은? 아마도 약간의 눈요깃거리와 그녀들의 깊어진 우정, 그 정도였나봐요. 캐리가 카페문을 열고 들어설 때, 모두가 소리를 질렀던 그 마음이 변치 않기만을 바랬던거죠. 아, 그 장면은 정말이지 눈물 나도록 좋았는데 말이에요.
그 때.
가장 먼저 캐리를 발견하고 소리를 지른 친구는 미란다였어요. 그 뿐인가요. 파리에서 걸려온 캐리의 전화를 받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캐리컴백!"을 외친 것도 똑똑한 그녀였구요. 하나 더 있네요. 망연자실한 빅에게 내 친구 데려오라 명령한 것도 미란다였지요. 그렇게 경멸하던 빅에게 말이죠!
미란다의 매력은 거기에 있어요. 가장 객관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하지요. 거기에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까지 있구요. 사실 자신의 일에는 다소 무릅니다. 저는 그녀가 70달러 짜리 초코케이크를 사지 않는 것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그 뿐인가요. 바텐더의 아이를 갖고, 혼자 그 아이를 낳지요. 그리고 다시 연애를 하고, 결혼해서 이사를 가고, 치매 시어머니를 모시고... 하지만 남자 하나로 바뀌는 인생에 주체적으로 적응하는 그녀를 보며 감동했던 것 같아요. 명색이 변호사인데 어딘가 모르게 한국 주부의 냄새도 물씬 나는 것이, 묘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구요. (아, 물론 저는 미혼에 변호사도 아니고 매그다 아줌마 같은 분 고용할 능력도 없습니다만. ;;;)
그러나, 그것이 판타지였다는 것을 이 영화는 너무 잔인하게 보여주고 있었어요. 사실 사랑 하나로 그 고생을 다 떠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선택인지는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지요. 그래도 저는 그녀가 선택한 "착하고 성실하고 미란다 밖에 모르는" 스티브라는 카드를 믿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대가 산산조각이 나 버린거지요. 스티브의 탓만은 아닙니다. 미란다의 메말라버린 일상이 오히려 절 더 슬프게 했어요. 언제나 영양가 있는 충고와 진심어린 위로를 아끼지 않던 미란다가 사만다의 무안한 쫑코 한방에 버럭 화를 내고, 스티브의 실수에 부르르 떨다니요. 캐리에게 말 할 타이밍을 놓친 채 눈치를 보고, 캐리의 분노에 불쌍한 표정을 짓다니요. 무개념 샬롯조차도 그건 다른 문제라고 (오랜만에) 제대로 판단했는데 말이죠.
그래서 저는 영화 초반 갑자기 세련되어진 미란다에 흐뭇하지 않았나봅니다. 그건 미란다가 아니었거든요. 미란다의 칼정장은 대체 누가 버렸을까요. 미란다의 회사 동료들은 어디로 가버린건가요. 김 빠진 맥주처럼 사는 이들 부부 때문에, 정말이지 미란다의 에피소드는 안본걸로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나름 화끈했던 화해 장면조차 끝없이 부끄러웠던 것도 이 때문이겠지요.
p.s.
... 그나저나 스티브는 또 왜 이렇게 늙어버린거죠. 브루클린, 그렇게 살기 뻑뻑한 동넵니까 ㅠ.ㅠ
(이제 그만 반납하세요! -_-;;;)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이 괴성. 이 맛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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