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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눌러앉기/2004-2006, Japan

오늘만 같았으면

by 하와이안걸 2005. 5. 10.
5월 10일. 저녁 근무.

오늘은 정말 간만에 즐거운 하루였다. 그냥 하루종일 웃다가 퇴근한 기분 좋은 날이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내가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만 죄다 출근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임시사원 중에서는 오카베와 코이케 아줌마가 날 든든히 지켜주었고,
사원중에서는 알수록 매력적인 아키바상과 만만한 하타노,
그리고 감기로 잔소리가 확 줄어든 다카하시가 골골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센베코너에는 후쿠다, 반찬코너에는 마키짱.
그리고 무섭거나 나랑 안맞는 사원들은 죄다 휴일, 더 바랄 것이 없는 멤버구성이었다.

게다가 골든위크도 끝나서 손님이 정말 한명도 없었다.
이 쯤이면 원래 사원들은 피가 말라서 더더욱 파견사원들을 들볶기 마련인데
오늘의 사원들은 전혀 그런 타입들이 아니었다.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슬슬 사는 사람들이라.. ^^
단 한명의 예외 독한 다카하시는 그 상황에 실적까지 신경쓰면 바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 몸으로 조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투혼으로 보였다.

오늘의 오카베는 정말 최고로 웃겼다. 심심함을 못참겠던지 마른 걸레에 클리너를
좍좍 뿌리더니 화과자관의 진열장을 모두 닦는 모범을 보였다.
물론 대충 닦으면서 각 코너의 수다쟁이들과 떠드는 것이 목적이라는걸 모두가 알고있지만.

여튼 오카베가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에 다들 뒤집어지게 웃던 하루였다.
저녁이 되자 나는 통로로 불려가 고구마양갱 시식을 권하는 헬퍼;로 변신했다.
자잘하게 조사;놓은 양갱접시를 내밀며 판매를 권하는 아주 민망한 작업이었으나
오늘만은 그 일조차 즐거웠다.

"아사쿠사의 명물 고구마양갱 어떠십니까?"
"동경 기념품으로 어떠세요? 시식도 준비되어있으니 보시고 가세요."
"맛있는 고구마양갱입니다. 이용해주세요."

통로를 춤추듯 뛰어다니며 신이 들린 듯 시식을 권하는 내 모습에 사원들이
깊은 인상을 받은 듯 했다. ;;; 그리고 정말 잘 팔리기도 했고.

폐점 직전, 사무실에서 반품 업무를 하는데 하타노가 갑자기 이것저것 지적했다.
한건밖에 없는데 왜 프린트를 하느냐, 팩스를 왜 지금 보내느냐, 아직도 파악 못했냐
어쩌구저쩌구 혼자 떠들더니 나중에는 막 비웃기 시작했다. 저게 미쳤나;;;
그러나 내 뒤에는 오늘의 나보다 백배는 업된 오카베가 있었다.

"오카베. 하타노상이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데?"
"뭘? 이거 반품업무 아냐? 제대로 하는거 같아보이는데 왜."
"한건밖에 없는데 왜 프린트를 하냐는 둥, 팩스를 지금 보내면 안된다는둥.. 난 이렇게 배웠는데 혹시 아닌거야?"
"음... 그건 말이지..."

오카베는 나를 구석으로 몰아세우더니 은밀하게 말했다.

"잘 들어둬. 이짱."
"응!"
"사실 저 녀석은 진짜 바보거든."
"뭐?"
"지금쯤이면 이짱도 알아챘을 줄 알았는데 아직 아니었군.
아니! 당신은 대체 왜 이렇게 친절한거야! 저 바보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니."
"아, 역시 그런거였군!"
"그러니 이짱. 저놈의 말은 못들은 걸로 하고 어서 반품을 마무리 짓도록 해. 빨리 집에 가야지!"
"좋아!"

반품처리를 마치고 돌아오자 사무실에서는 오카베와 코이케 아줌마가 마지막 상품권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둘이 손발이 안맞는지 자꾸 계산이 틀려서 또 한바탕 시끌시끌 했다.

"아이고 아주머니! 여기에 이걸 더하면 어떡해요!"
"난 안틀렸어. 오카베짱이 불러준대로 계산했다고!"
"아이고 아주머니! 오카베 빨리 집에 가야해요. 아주머니도 빨리 가셔야죠. 집에 애들이 기다려요."
"애들은 지금 자요. 걱정말고 처음부터 다시해요."
"뭔 애들이 8시 반에 자요!"
"우리 애들은 착해서 그때 자요."
"오 이런! 그럼 불쌍한 오카베는 언제 집에 가죠? 밖에서 애인이 기다리고 있다구요!"
"거짓말 말고 빨리 다시 부르기나해. 오카베짱!"
"아, 진짜라구요! 오카베 기다리는 남자 있어요!"
"뭐, 정말이야?"
"오카베는 오늘이 월급날이라..."
"오~ 둘이 멋진 곳에 가는군!"
"그게 아니고 사실 꾼돈 받으로 온거에요. ;;; 빨리 빨리 좀 해요. 아줌마!"

계산이 무사히 끝나고 아키바상은 오늘 수고했다며 반찬코너에서 반품처리하고 남은 홍당무 절임;;;을 나눠주었다.

"모처럼 애인 만나러가는데 이런 이상한 걸 주다니! 오카베는 거절하겠어요!"

바람처럼 사무실을 나선 오카베의 엄청난 발소리가 점점 희미해졌다.
아, 매일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 집에 가는 길에 내일의 멤버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휴일보다 더 기다려지는 오늘같은 황금멤버...





이젠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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