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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눌러앉기/2004-2006, Japan

익숙해지는 즐거움

by 하와이안걸 2005. 5. 11.

5월 11일. 10시 근무.

오늘도 센베코너. 오전에는 후쿠다, 오후에는 고바야시와 함께였다.
한산한 오전이 지나갔다. 그러나 오후 레지 점검에서 센베코너에 마이나스 레지고사가 발생하고 말았다. ㅡ,ㅡ;;;
다들 간만에 긴장했다. 오전에는 후쿠다와 나 밖에 없었는데.. 게다가 이렇게 한산했는데..
사원들의 얼굴이 마구 찌푸려졌다. 괜히 또 겁먹었다. 나라고 생각할까봐.
내 기분을 눈치를 챈 고바야시가 조그맣게 말을 걸었다.

"걱정마. 후쿠다가 분명해."
"뭐?"
"저 놈 눈을 봐. 잠 못자서 반도 못뜨고 있잖아. 요즘 계속 실수가 많았거든."
"그래도 내가 있는데 후쿠다를 의심하겠어?"
"여기서 사고나면 무조건 오오츠카 아줌마 아니면 후쿠다야. 이상은 안틀린다는거 내가 알아."
"ㅠ_ㅠ"

열라 감동했다. 순간 고바야시의 얼굴에서 광채가 마구 뿜어져나오는 듯 했다.
고바야시 한마디에 완전 탄력받아서 무사히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오후에는 특이한 일이 있었다. 신입사원으로 21살;;의 소녀; 둘이 들어왔는데
그 중 한명, 아라키(荒木)라는 사원이 매우 뒤쳐지는 모양이었다.
키도 작고 몸집도 가냘프기 그지 없고, 목소리는 그야말로 모기같은 그녀.
알고보니 혈액형도 AB형이라 "어쩐지.." 이런 소리까지 듣는 듯 했다. ;;;
사무실에 들어가면 다들 아라키 걱정으로 한가득이었다.

'오늘은 니가 만쯔를 맡아봐라.'
'내일은 내가 붙어볼게.'
'이건 좀 나중에 시켜보자..'  

나에 대해서도 사무실에서 저렇게 공공연하게 남들 다 들어라하는; 회의가 열렸던 걸 알기에
더더욱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ㅠ.ㅠ

여튼 그러던 중 드디어 그녀가 메인이 되어 돈바꾸러 가는 일이 맡겨졌는데
뜻 밖에도 메이커 사원인 후쿠다군을 불러내는 것이다. 원래는 사원+임시사원이 가야하는 것이라
"뭘 모르는" 그녀의 솔직한 발언에 모두들 놀라버렸다.
조장언니는 순간 매우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후쿠다더러 같이 다녀오라고 했다.
둘이 사라지고 매장안은 웅성웅성 난리가 났다.

"뭐야? 뭐야? 후쿠다가 저길 왜 가는데?"
"이제 파견사원도 같이 가기로 한거야?"
"그건 아닌거 같고 후쿠다가 뽑힌거 같은데?"
"후쿠다 여자친구 있지않나? 이를 어쩌나.."
"오. 앞으로 이거 재밌겠는데?"

아라키는 이런 말이 도는걸 알고나 있을까. 돈가방을 메고 휘청거리며 사라지는 그녀가
더더욱 안스럽게만 보였다. 같은 혈액형이라 그러는건 아니다. ;;;

퇴근시간이 되어 락커로 향하는데 오랜만에 아이란도의 구보를 만났다.

"이짱. 오랜만이네? 퇴근?"
"응. 구보짱도 수고했어."
"거기도 요즘 손님 없어?"
"응. 그래서 요즘 하루가 어찌나 길게 느껴지는지 몰라."
"그건 이짱이 이제 익숙해져서 그래."
"응?"
"이짱. 요즘들어 발도 막 아프지?"
"응."
"이짱이 공항일에 적응을 했다는 증거야. 좋은 일이라구."
"그런가?"
"그럼. 처음에는 긴장해서 발도 안아프고, 시간도 빨리 갔을거야. 분명."
"응. 그러네 정말. ^^"
"정말 잘됐네. 이짱."

터프한 구보의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네 인생 새옹지마라더니;;
실컷 앓고난 후에 다가오는 달달한 날들.
아, 그나저나 나의 나쁜 숨은 어찌된걸까. 내일 도노시로 언니에게 물어봐야지.




이젠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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