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다녀왔다.
생각보다 더웠지만,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그리고 '아, 또 1년을 기다려야겠지' 생각하니 금세 숙연해졌다.
하지만 이제 그러지 않으려고, 이렇게 다짐해본다.
이면지의 시간
p.5 여름휴가
"너 꼭 여행까지 와서 이래야겠어?"
"너야말로 이럴거면 여행 왜 왔어?"
제가 요즘 꽁냥꽁냥하며 보고 있는 드라마 <연애의 발견>의 대사 중 일부입니다. 명대사라고 할 것도 없이 너무 흔하게 보는 광경이죠. 여행에서만큼은 행복했으면 하는 태하(에릭)와 행복한 기분으로 여행을 가고 싶은 여름(정유미). 여러분은 누구의 마음에 더 가까우신가요? 오늘은 여행과 일상의 오묘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 가을인가 싶다가도, 불쑥 찾아오는 더위와 소나기에 당황스러운 요즘, 저는 늦은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예전 같으면 책과 지도를 찾아보며 동선을 짜고, 맛집도 넉넉하게 조사했을텐데, 이번에는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갔습니다. 언젠가부터 여행을 일처럼 준비하고, 여행지에서도 매 순간 '애쓰는' 모습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올해는 그냥 확 놓아보기로 했습니다. 결과는? 모두의 예상대로 무탈했습니다. 여행은 여행대로, 일은 일대로 순조롭게 잘도 흘러갔지요.
명확한 일정 없이 무작정 떠난 올해의 휴가는 준비하고 떠난 여행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갑작스러운 날씨의 변덕 속에서, 생각보다 맛이 없는 식당에서, 누군가가 잘못 알려준 방향 속에서 당황하지 않고~ 남탓으로 돌리지 않고, 어떻게든 대안을 찾아 플러스의 기분으로 돌려놓는 과정을 즐기게 되었어요. 특별한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나의 존재가 너무도 아까워, 크고 작은 실수에도 자책할 겨를이 없었나봅니다.
또한 끼니를 제때 챙겨 먹고, 틈틈이 물도 마시고, 자기 전에는 욕조에 몸을 담그거나 발바닥에 파스를 붙이는 부지런함. 다음날의 컨디션을 위해 잠자리 온도에 더욱 신경을 썼구요. 평소에는 먹지도 않는 아침을 먹겠다고 알람을 맞추기도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평소보다 많은 걸음, 웃으며 찍는 사진, 파트너와의 충분한 상의, 의견 충돌 후의 기분 살피기 등 체력과 함께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니 여행 기분을 쭉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행복의 샘플을 만드는 것 같았어요.
이러한 노력과 행동으로 만들어 낸 하루는, 물론 좋았습니다. 여행 전에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일정 내내 스마트폰에 의지하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지요.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나쁜 마음을 갖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충분히 이야기를 하는 것. 짧은 여행에 임하는 우리의 당연한 노력들이 일상에도 이어진다면 조금 더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9월의 시작과 함께, 그리고 곧 다가올 이른 추석과 함께 공식적인 여름은 이제 막을 내렸습니다. 뜨거운 여름 안에서 만들어낸 여러분의 소중한 경험이 멋진 영감으로 전환되길 바라봅니다. 그리고 새로운 계절에는 일상을 여행의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가끔은 평범하지 않은 점심 메뉴에, 사진도 진지하게 찍어보고, 익숙한 동네를 낯설게 걸어 보아도 좋겠지요. 아, 사진 하니 생각나는데요. 제가 요즘 <연애의 발견>만큼 빠져있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셀카봉! 이거 정말 강추입니다. ^^
*
오늘의 BGM : Fake Traveler by 페퍼톤스
http://youtu.be/uQg6AWPhzYs
이젠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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