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진 추모공연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 - 어느 모임 부적응자의 고백
조금 전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끝난 故 조동진의 추모 공연에 다녀왔다. 사실 나는 하나음악보다는 동아기획, 조동진보다는 조동익을 좋아했다. 나에게 조동진은 어린 시절 내가 흠모하던 대부분의 뮤지션이 존경하는 선배이자 음악적 스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공연 날짜가 다가올수록 피곤해서 가기 싫고, 멀어서 가기 싫었다. 그밖에도 가기 싫은 이유를 열 개는 더 댈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사실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 청춘의 큰 덩어리를 차지했던 모 동호회 회원들이 이날 대거 출동한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혼란의 세기말, PC 통신을 통해 만난 우리는 음악깨나 듣는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재수 없는 무리였다. 하루라도 게시판에 글을 올리지 않으면 금단 현상이 오던 1세대 관심종자들. 그들이 한날한시에 모인다는 사실은 꽤 오래전부터 나를 숨 막히게 했다. 하지만 최악은 그 시절의 나였다. 관종은 기본이요, 허세는 옵션. 거기에 나이까지 어려 부끄러움마저 없던 완벽한 사회악. 그렇다. 나는 중년이 되어 어색하게 재회할 그들이 아닌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그들이 두려웠던 것이다.
공연장 로비에는 그의 추모 전시와 함께 '조동진 사단'이라 불리던 하나음악(현 푸른곰팡이)의 어제와 오늘이 펼쳐져 있었다. 조동진 연대기로 꾸며진 한쪽 벽면은 오랜만에 공연장을 찾은 중년의 포토존으로 인기만점이었다. 평론가와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고, 김현철이나 정원영 등 하나음악 언저리에서 활동하던 그 시절 오빠들이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듯 인파에 섞여있었다. 신기한 구경도 잠시, 서둘러 로비를 탈출한 나는 공연장 안 푹신한 의자에 몸을 눕혔다. 조명이 모두 꺼진 뒤에야 비로소 자유가 찾아왔다.
하나음악의 미모 담당이자 막내 라인이었던 이규호가 어느덧 푸른곰팡이의 중심이 되어 첫 무대를 이끌었다. 그 뒤로 조동희, 정혜선, 소히가 오랜만에 무대에 올라 고인을 추모했고, 푸른곰팡이의 차세대 뮤지션인 새의 전부, 오늘의 무대가 이어졌다. 특히,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정혜선에 박수가 쏟아졌다. 오소영의 안정적인 기타 연주와 함께 흘러간 '작은 배', 김정렬을 주축으로 한 재즈 밴드 더 버드의 '슈누의 왈츠', 그리고 한동준의 익숙한 노래들이 뒤를 이었다. 특별 게스트였던 기타리스트 이병우는 그의 필살기인 '새'를 격정적으로 연주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뜨거운 열기 속 한국 포크음악계의 대모이자 하나음악의 영원한 뮤즈 장필순이 등장했다. '제비꽃'을 읊조리는 그녀의 옆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겨울비' 또한 그녀의 곡인 양 처연했다.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로 마무리하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스크린에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눈깨비'가 흘러나왔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렇게 서 있었는지...' 바쁜 일상을 핑계로 일시정지 되었던 마음에 예상치 못한 진동이 찾아왔다. 어디 나뿐이었으랴. 음악도 낭만도 잠시 잊고 살던 복잡한 마음들이 '제비꽃'도 '오래된 친구'도 아닌 '진눈깨비'에서 터져 나왔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 함께 '나뭇잎 사이로'를 부르며 공연은 후반을 향해 달려갔고 한동준은 끝내 노래를 잇지 못했다. 공연 내내 아름다운 건반으로 세션의 중심을 잡아주던 박용준의 선창으로 마지막 곡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가 시작되었다. 떼창에 묻혀버린 그의 힘 없는 솔로 파트가 아쉽고도 반가웠다. 앵콜곡 ‘행복한 사람’의 전주가 시작되자 객석에서는 미리 준비한 LED 촛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다. ‘울고 있나요. 당신은 울고 있나요.’ 그의 선문답이 한 줄 한 줄 스크린에 뜰 때마다 관객들은 불빛과 눈물로 공감했다. 오랜만에 다시 드는 촛불과 오랜만에 함께하는 노랫말. 치유되는 순간이었다.
두 시간의 공연이 끝나고 다시 로비로 나왔다. 줄줄이 붙어있던 포스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리마스터링 CD를 판매하는 부스 앞은 장사진을 이루었다. 서로 시선을 피하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가가 안부를 물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로비를 떠나지 않던 우리에게 대기실 방문이라는 행운이 찾아왔다. 뮤지션도 늙고 팬도 늙었다. 별말 없이 목례만 수차례 나누고 헤어졌지만 우리는 죽지 않은 덕력을 추켜세우며 자축했다. 촌스럽지만 단체 사진도 한 장 남겼다. 공연 시작 전부터 도망칠 구석만 찾던 나는 결국, 이들과 함께 두 시간을 더 보내고 막차를 탔다.
소리로 맺어진 인연은 아무런 맹세 없이도 서로를 그리워하고, 불러들인다.
공연의 첫장을 수놓던 그의 초대글 중 일부다. 쓸데 없는 걱정으로 가득했던 내게 하는 말 같아 따끔하다. 앞서 나열된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의 노래에는 해로움이 없다. 부정적인 마음도, 절망도 없다. 노래처럼 살다간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우리들에게 오늘의 약발이 부디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물론 나는 내일부터 또다시 자극적인 음악과 해로운 단어 속에서 살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가 좋아했던 음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그리고 우리는 그의 꿈대로 이렇게 살아남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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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쓰기 합평 모임을 갖게 되어 숙제글로 작성했습니다.
평소답지 않게 글밥 많은 글이 올라오면 숙제하는구나... 욕본다... 생각해 주세요.
사실 요즘... 좋은 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봅니다.
(네. 귀찮고 힘들다는 뜻입니다. ㅋㅋㅋ)
이젠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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