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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고/그냥

아빠생각

by 하와이안걸 2018. 5. 11.


오월의 첫날. 

아버지가 먼길을 떠나셨다.

그날부터 매일이 지옥이고 자책이다.

무엇이 부족했을까.

나의 어떤 마음이 아빠와 멀어지게 했을까.

내가 부렸던 짜증과 원망이 고통스럽다.



내가 이러한데 엄마는 오죽할까.

삼우제를 마치고 오랜만에 강화집에 들어가는데 

엄마는 역시나 문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거짓말처럼 티비도 켜져있었다.

그날밤 아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부터 집을 내놓고 이사 준비를 시작했다.



아빠의 물건들은 생생하다. 

투병 기간동안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티비에 나오는 소소한 생활 정보를 메모하고

종교가 없던 분이 성경책도 필사하셨다.

창세기가 아닌 잠언부터 씌여있었다.

아빠 글씨가 너무 새것이다.

한달 전에도, 아니 보름 전에도 

아빠는 뭔가를 쓰고 계셨다.



장례식을 떠올려 본다.

생각보다 많은 지인들이 찾아와 주었다.

실없이 반가웠다.

상복을 입은 것도 잊은 채 안부를 묻고 깔깔거렸다.

사진이 좋다는 위로를 칭찬이라 착각했다.

친척들과 아빠 친구분들이 건네는

고생했다는 말을 곧이 곧대로 듣고 

아빠가 들어줬으면, 알아줬으면 했다.

그날 나는 이상하고 이기적인 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다.

곁에 없으면 다 소용없다.

아빠가 이 세상에 없다니.

지난 달엔 계셨는데 오늘은 안 계시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우리는 다섯 식구인데 어떻게 네 식구가 될 수가 있지.

아빠는 지금 어디에 있지.

어디로 가고 있지.






아빠.

마지막으로 아빠 얼굴을 보던 날

멋진 말을 하지 못했어요.

그간 고생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고

용서를 빌 자격도 내겐 없었어요.

근사하게 아빠의 명복을 빌어주고 싶었는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그냥 좋은 곳으로 가시라는

모두가 하는 그 말만 겨우 했어요.

아빠. 좋은 곳으로 갔어요?

좋은 곳에 있지요?

야구도 뉴스도 매일매일 잘 보고 있지요?



오늘 문득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어요.

엄마를 보살펴 주세요. 일으켜 세워 주세요.

저도 지금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아빠를 조금이라도 닮았다면

어딘가 강한 모습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엄마는 다르잖아요.

그러니 부디 엄마 꿈에 좋은 모습으로 나와 주세요.

살도 다시 찌고, 예전처럼 잘 걷고

잘 웃는 모습으로 나타나 주세요.

그리고 잘 있다고 걱정 말라고 말해 주세요.

엄마 더는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살아생전 엄마를 아껴준 것처럼

그곳에서도 엄마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부탁만 해서 죄송해요.

모든 게 다 죄송해요.

저는 이제서야 제정신으로 울고 있어요.




아빠 계신 곳 바로 뒤에 이렇게 큰 떡갈나무가 있어요.



상수리나무인줄 알았는데 떡갈나무가 맞대요.



주변 나무들 중에 제일 크고 색도 가장 예뻐요.



아빠 앞에서 하늘을 보면 작은 동산이 보여요.



언덕에 올라가서 아빠를 보면 이 떡갈나무가 보이고요.



꽃도 많고 나물도 많아요.



꽃길.



말그대로 꽃길이예요.



특히 이 보라색 꽃이 엄청 많아요.



산소 위에 피면 뽑아줘야 하나 고민 될 것 같아요.



국화 위에 나비가 앉았어요. 보이세요?

아빠가 이렇게 우리를 보러왔나 싶었어요.

이런 유치한 생각 나는 안할 줄 알았는데

다들 같은 생각을 했대요. : )



아빠. 나비가 된 것이라면

평생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는 나비가 되세요.

절대 아프거나 다치지 마세요.

아빠가 날고 싶을 때

어디든 힘차게 재미있게 날아요.



아빠. 계속 기억하고 그리워할게요.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행복하세요.

정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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