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동 파란대문 국물떡볶이 : 30년 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던 맛! 여기까지 품어야 떡볶이 박사 인정!

90년대 초반.
중학교 때 처음 사귄 친구 손에 이끌려 가 본 국물떡볶이집.
간판이 없는 비밀스런 외관에
국물떡볶이라는 말도 처음이었다.




주문 방식*은 독특했고
대접에 가득 담긴 떡볶이는 무척 어른스러웠다.
그리고 그 맛은 더 어른스러워서 깜짝 놀랐지만
아까운 내 용돈 날릴 수 없고
처음 다가온 친구를 실망시킬 수 없어서
꾸역꾸역 다 먹고 나온 기억.




*주문 방식
금액, 계란 수, 오뎅 개수를 순서대로 외친다.
예를 들면 이런 느낌.

오백에 하나 반반이요. (계란 1개, 오뎅과 떡 1:1 비율로 오백원어치)
삼백에 다섯개요. (오뎅 다섯 조각에 나머지는 다 떡으로 해서 삼백원어치)
오백에 하나에 떡만 주세요. (계란 1개, 나머지 떡으로 해서 오백원어치)




떡이 백원에 몇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배고플 땐 떡으로만 채우고
용돈 좀 있다 싶을 땐 하나 반반으로 계란과 오뎅의 호사를 누렸다.






그 후로도 친구는 국물떡볶이를 먹으러 가자 했고
그럴 때마다 신수시장 포장마차로 유도하는 등 요리조리 피해봤지만
세 번에 한 번은 여기를 갈 수밖에 없었고
그러는 동안 어느 새... 떡며들고 말았다......






그 친구와는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데
몇 년만에 생일을 챙겨준다기에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혹시나 하고 검색해 보았다.

개코 맛집 무엇

아직도 있다니!
기쁜 마음에 여기로 점심 장소를 정하고
합정에서 만나 택시를 타고 모교를 지나 쭉쭉 들어오는데...




아파트도 많이 생긴 듯 하고
골목골목 너무 변해서 찾아갈 수 있을까 걱정을...
...
...

응?

왜 그대로입니까 ㅠㅠ

왼쪽 담이 신석초교

낙서가 간판

이럴 수가

이럴 수가 ㅠㅜ

이 마루에서 셀프로 상 펴고 먹었는데

사장님, 안녕하셨어요? ㅠㅠ 저희 30년만에 와 봐요. ㅠㅠ
응. 어디 졸업생?
신수중학교요. ㅠㅠ
잘 왔어. 가격이 올라서 어떻게 시켜야할 지 모르겠지?
네에 ㅠㅠ 알아서 주세요. ㅠㅠ
아이구. 그래요. 그때처럼 맛있다고 느껴야 할텐데... 요즘 먹을 게 많아서...
사장님, 그대로세요. ㅠㅠ
ㅎㅎㅎ 그대로긴. 완전 할머니가 다 됐지!

오천원에 하나 반반 ㅠㅠ

가위는 초면입니다

말캉거리다 못해 죽인가 싶게 스르륵 넘어가는 밀떡에
꼬릿꼬릿 짭조름한 오뎅 (당시엔 십자로 가른 길쭉 오뎅이었음)
그리고 노른자가 어디 한 군데로 몰리거나
껍질을 까다가 금이 가 국물이 쏙쏙 배어든 계란.




숟가락으로 뚝뚝 끊어 오뎅과 함께 얹어 먹거나.
떡국처럼 국물과 함께 얌전히 떠 먹거나.
따로따로 집어먹다가 중간중간 국물을 마시거나.
중학생으로 돌아가 각자의 스타일대로 먹는 우리.
떡볶이 개수를 세어보자는 말 따위 잊은 지 오래.




국물 한 숟가락 먹고 서로의 얼굴을 본다.
아. 우리의 국떡은 이런 맛이었지.




일단 여기는
단맛이라고는 일도 없다.
떡볶이 특유의 가볍고 달달한 맛이 그래도 좀 나겠지... 기대하면 엄청 놀랄 것.
오히려 은은한 매운탕에 가깝다고 해야하나?
어른이 되어 다시 먹어도 놀랄 맛이었다.
(이런 해장맛 떡볶이 먹고 자란 우리 학생들 소중해 ㅋㅋㅋ)






가만히 우리를 보던 사장님이 다가왔다.






어때? 먹을만 해?
너무 맛있어요 ㅠㅠ
나 이제 기억나. 이 친구는 그때보다 살이 좀 쪘지? (나 아님)
맞아요! ㅠㅠ (나 아님2222)
이 친구도 알겠고, 이 친구도 기억 나. 다들 나이 많이 먹었겠는데?
네에에에에 ㅠㅠ






주말인데 한가하네요. 자리에 못 앉을 줄 알았어요.
요즘엔 학생들이 안 와. 애기들 키워봤으니 알지?
아아...
학교 끝나면 차 타고 이동하기 바쁘지. 걸어서 떡볶이 먹으러 안 와.
그렇구나...
주말이나 되야 이렇게 졸업생들이 와서 포장해 가고... 차 세우기 어려워서 앉았다 가지도 않아.
자주 올게요 ㅠㅜ
아이구. 반갑고 고마워라.










[카카오맵] 신수동국물떡볶이
서울 마포구 대흥로9안길 3 (신수동) http://kko.to/ok3q-j_Cb

신수동국물떡볶이

도전하실 분?
이젠 정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