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30. 수요일
출국 전날 친정 강화도에 입성, 삼개월 간 주인 없을 집을 점검했다.
가스, 전기, 인터넷, 휴대폰 정지 상황과 함께 부모님의 짐도 꼼꼼히.
음식은 어떻게 쌌는지, 옷은 어떤 것을 가져가는지
조교처럼 잔소리를 해가며 마지막 밤을 맞이했다.
새벽 5시 기상.
엄마가 아침을 차려준다 할까봐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냉장고에는 먹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ㅋㅋ
거실에 있던 어항과 아끼는 화분 몇 개는 지난 주 방문한 작은 오빠에게 모두 맡겼다 한다. 굿잡!
세 명 모두 대한항공을 이용하므로 23kg * 2개 가방만 가능
여행 가방이 넉넉치 않아서 이집 저집 닥닥 긁어모아도 다섯 개 ㅋㅋㅋ
하나는 음식 박스로 만들어 꽁꽁 싸맸다.
차에 안들어가서 고생 ㅠㅠ 결국 가방이 사람을 제치고 조수석 차지
초지대교를 넘어 우측 바닷길을 따라 어찌어찌 가니 40분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앞으로 공항 갈 때는 이 길을 타야겠군요!
운전석의 김서방은 호기롭게 이야기했으나
두 분의 반응은 '공항 갈 일이 있겠나' 하는 표정.
공항 도착 후부터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티켓팅 카운터 줄이 생각보다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다들 배는 고프고, 줄은 길고, 짐도 많아 힘들고,
나 역시 공항에서 환전, 보험, 휴대폰, 출력 등등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아 갑갑했다.
부모님과 남편에게 줄을 맡기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나에게
기다림에 지친 아빠는 불평을 쏟아냈다.
"노인들 먼저 보내주는 카운터는 없냐?"
"그런 서비스가 있으면 (우릴 이 줄로 안내해준) 직원이 말을 했겠죠."
나 역시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게 모르게 타들어가던 내 속이 하필 출발일에 뒤집어지다니.
중간에 낀 엄마는 사위 눈치만 계속 봤다.
아, 우리는 어디로! 왜! 가는 것인가!!!
생각보다 티켓팅이 늦어지는 바람에 남편과는 출국장 앞에서 인사를 나누어야 했다.
이 험난한 길을 나 홀로 헤쳐나갈 생각을 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갑작스러운 이별 장면에 남편은 당황하고,
부모님은 공복의 김서방 걱정에 내가 우는지 어쩌는지 관심도 없고 ㅋㅋㅋ
다행히 게이트는 출국심사대 바로 근처였다.
역시 국적기+미주 노선의 힘인가!
푸트코트에서 어설픈 비빔밥과 냉면을 먹으며,
마지막 한국에서의 식사를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엄마 아빠는 비행기 입구에 비치된 조간지를 착착 챙겨왔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자마자 맨바닥에 신문을 깔고 신발을 벗었다.
"너도 신문지 줄까?"
"슬리퍼 나눠줄텐데..."
"!!!!!"
엄마는 응팔의 라미란처럼 크게 웃었다.
몹시 슬펐지만 따라 웃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참아라 눈물샘이여!)
모니터와 리모컨 사용법 또한 열과 성을 다하여 설명해 드렸다.
처음에는 지도만 보겠다며 제대로 듣지 않던 두 분은
비행 시간이 밑도 끝도 없이 길다는 것을 체감한 뒤 스스로 사용법을 터득하시기에 이르렀다.
참고로 아빠는 12시간 동안 한숨도 안 주무시고 영화를 네 편이나 보셨다.
10:24 이륙
11:10 음료, 땅콩
12:00 기내식
첫 기내식이 등장했다.
소고기&감자, 된장비빔밥, 해산물&면
대한항공 비빔밥을 먹어보지 못한 나는 된장비빔밥을 시켰고
부모님은 소고기로 통일하셨다.
세 명이니까 메뉴 하나씩 골고루 시키자 할 법도 한데
고기 앞에서 두 분 모두 단호하셨다.
하지만 느끼했는지 나의 무채 반찬을 가져가셨다.
전체 소등과 함께 엄마와 나는 한숨 늘어지게 잤다.
중간 중간 깨어 시계를 봐도 12시간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엄마와 함께 화장실에 갔는데 사람이 많아 애매한 위치에 줄을 서야했다.
승무원이 맨 뒤쪽 화장실은 덜 붐빈다고 알려주어
잠든 승객들 사이를 지나 맨 뒤로 가 보았다.
"엄마, 여기에도 창문이 있어!"
맨 뒤쪽 공간에 달린 창문을 열자 노을이 지고 있었다.
엄마는 허리를 굽혀 창밖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말은 안했지만 창가 자리가 궁금했나보다.
그렇게 우리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비행기 맨 뒷칸을 방문하여 창밖을 보고 왔다.
잠이 오면 잠을 자고, 그렇지 않을 때면 무조건 뒷칸으로 갔다.
나중에 엄마는 나 없이도 혼자서 잘 다니셨다.
3:30 간식
"피자, 새우깡, 삼각김밥 중 뭘로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피자를 선택했다.
엄마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피자를 드시며 말씀하셨다. "어디 새우깡이!!!"
길고 네모난 피자. 뜨거워서 맛있었어요.
오랜만에 엄마와 뒷칸으로 이동하는데 그곳은 이미 명소가 되어있었다.
기내의 모든 어머님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던 것이다.
스트레칭과 제자리걸음, 벽치기도 기본이었다.
그쪽은 어디 가시냐... 영주권 있냐... 티켓은 얼마에 샀냐...
엄마에겐 이미 멀고 먼 앨라배마에 사시는 새 친구가 생겼다. ㅋㅋㅋ
6:00 드디어 점등!
뜨거운 수건과 함께 음료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이제 새로운 아침이라 이건가!
이제 3시간만 버티면 된다.
7:00 기내식
대구고추장구이, 닭고기볶음밥, 토마토소고기스튜
두 분 모두 대구를 시키셨지만 실망이 크셨다.
10:05 음료
11:10 착륙 (DFW 공항)
손목시계로는 밤 11시인데
휴대폰 시계는 오전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살떨리는 입국심사를 거치고 이제 좀 나가나 싶었는데
갑자기 카트를 미는 아빠를 불러세워 항공권에 AR이라고 적는 직원
Agricultural 의 약자였다. 우린 음식물 검사에 걸린 것이었다. ㅠㅠ
우리의 짐 중에서 박스를 뜯어 하나하나 헤집어보는 세관원.
비닐 장갑을 끼고 만두를 으깨기 시작하는데
죄지은 것도 아닌데 너무 무서웠다...
다행히 만두만 헤집어 보고 다른 반찬들은 그냥 구경만 하고 넘어가는데
엄마가 강화도 고구마를 통째로 싸왔을 줄이야;;;
"이 포테이토는 언쿡이라 안돼!" (쓰레기통에 던짐)
엄마는 다들 옷가지에 잘 숨겨가는데 너무 음식 박스에 당당하게 넣어 걸렸다며 아쉬워하셨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라미란 웃음이 터뜨리셨지만
매정한 딸내미는 받아주지 않았다. ;;;;;;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강화를 떠난 지 15시간만에
드디어 큰오빠와 조카가 기다리는 입국장의 문이 열렸다.
12:45 가족상봉
아직 끝나지 않은 기나긴 Day 1
2편에 계속됩니다.
이젠 정말 끝.
'언젠가 눌러앉기 > 2016, Dallas' 카테고리의 다른 글
Day 4 : 꿈의 산책로 (4) | 2016.04.02 |
---|---|
Day 3 : 인앤아웃 (6) | 2016.04.01 |
Day 2 : 서머타임 (4) | 2016.03.31 |
Day 1 : 비행가족 (2) (4) | 2016.03.30 |
Day 0 : 프롤로그 (6) | 2016.03.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