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 새벽근무. 추석.
새벽 3시 40분. 눈이 안 떠졌다. -=.= 겨우 세수만 하고 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
역까지 휘청휘청. 새벽 4시의 하늘은 다시 캄캄해졌다.
겨울의 새벽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에 왠지 우울했다. 시간 정말 빠르다.
3 연휴의 가운데 날인 오늘. 붐비지도 한산하지도 않은 애매한 날이다.
역시나 일요일 치고는 사람이 없었다. 대신 내일 엄청 바쁘겠군.
내일부터 휴일이 시작되는 나로서는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오늘은 김짱과 그렇게 벼르던 씨즐러에 가기로 한 날.
집에서 명절요리 뭐라도 해먹을까 생각도 했지만 둘다 너무 지쳐있는 상태였다.
가서 야채랑 과일이랑 많이 먹어야지. 디저트도 듬뿍듬뿍.
눈 앞에 펼쳐질 샐러드바를 생각하며 오전을 버텨냈다. 진짜루 ;;;
12시가 되자 오후근무조가 몰려왔다. 고상이 반갑게 인사하며 말을 걸었다.
그러고보니 계속 근무가 엇갈려서 오랜만이다.
요즘 폐점 업무가 늦어진다며 사원들에게 잔소리를 듣는다더니 정말인가보다.
고상은 어제도 대단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 때 오카베가 끼어들었다. "이짱 안녕~"
응? 오늘 어째 이상하다. 오카베는 고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렇게 둘이 한국말로 떠들면 멀리서 떨떠름하게 바라보곤 했다.
'너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하는 눈빛으로. 근데 오늘은 경쾌하게 말을 다 건다.
"이짱. 어제 말이야. 고상이 정말 혼났다구. 별일도 아닌걸로 어찌나 가-가-가- 잔소리하던지."
"응. 지금 고상도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내가 봐도 요즘 이 분위기는 정상이 아니야. 그러니까 고상도 신경쓰지마.
다른 매장으로 바꿔달라 하면 되는거야! 여기서 평생 일할거 아니잖아!!!"
오카베는 특유의 말투로 시원하게 뱉어내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오카베를 껄끄러워하던 고상도 오카베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는다.
역시 공공의 적은 이렇듯 안 친했던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준다. ㅠ.ㅠ
갑자기 잠이 확 깨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간만에 오카베 버닝 모드.
저 포쓰는 돌아가기 전에 반드시 전수 받으리라!
힘들었던 사흘간의 근무를 마치고 휴일을 앞둔 오후. 날은 끈적였고 잠은 마구 쏟아졌다.
그러나 그 곳에 도착하니 힘이 솟았다. 씨즐러 신주쿠점.
창가에 마주 앉은 두 여인은 미친듯이 샐러드바를 들락거렸다.
"언니! 이게 변비에 짱이래. 한국에선 이 쥬스 없어서 못 판대!" (푸룬을 집어주며)
"야! 저거 다 집어. 다 집어. 빨간색으로 다 집어. 빨간게 제일 비타민 많대!" (파프리카를 집어주며)
"언니 아보카도 생으로 먹어? 좀 줄까?"
"아니. 못 먹어. 이거 브로콜리 순이래. 먹어보고 괜찮으면 길러보자."
"언니~ 왜 흰밥을 먹어. 잡곡밥도 있는데!"
"이 스프 밑에 새우 깔렸다. 막 휘저어! 휘저어!"
"언니~ 과일이 은근히 배불러. 차라리 아이스크림을 먹어."
"왜 이래. 이거 햇배야 햇배! 아, 근데 사과가 없냐. 어떻게..."
"언니 샐러리 먹어?"
"아니. 못 먹어. 근데 나 아이스크림에 캬라멜 잔뜩 뿌려도 돼? ;;;"
"언니. 왜 그래~ 난 초코렛이 반이야;;;"
"근데 쟤네는 왜 저렇게 안나간대? 밖에 사람들이 저렇게 기다리는데 적당히 좀 먹지."
"언니 우리는 언제까지 있을거야? ;;;"
"벌써 배불러??? 그런거야???"
"어우 아니지~~~"
그날 우리는 전철역 네 정거장을 걸었다 ㅡ.ㅡ;;; 그래도 배가 꺼지지 않았다.
걷는 길에 많은 이야기를 했고 (제대로 운동해서 살빼자 뭐 이런;;)
각자 식구들로부터 푸근한 안부 전화도 받았다.
생일날과는 달리 따뜻하고 풍성한 한가위였다.
게다가 내일은 둘다 쉬는 날이고. (9월 19일. 경로의 날. 휴일.)
오늘의 밤공기는 정말이지, 걷기 딱 좋을 만큼 덥고 시원했다.
이젠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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