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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눌러앉기/2004-2006, Japan

클레임을 막아주는 방패

by 하와이안걸 2005. 4. 27.
4월 27일. 새벽 근무.

오늘도 간만의 새벽 출근에 정신이 없었다. 봄이라지만 새벽은 춥기만 했다.
물을 끓여서 패트병에 넣고, 품에 안고 역으로 향했다.
전차안에서 한숨 자려면 이 뜨거운 패트병이 필수다.
처음에는 추워서 그랬는지 긴장해서 그랬는지 아무리 꽁꽁 싸매도 잠이 오질 않았는데,
이제는 잠바속에 패트병 품고 있으면 딱 알맞게 잠이 온다.

그러나; 너무 깊이 잠든 나머지 역 하나를 지나쳐서 눈을 뜨고 말았다. ㅠ.ㅠ
겨우 한 정거장이지만 새벽의 경우엔 사정이 다르다. 반대편 열차 시간도 봐야하고,
공항가는 모노레일 쾌속을 놓쳤으니 시간 계산도 다시 해야한다.
여튼 그렇게 생쇼를 한끝에 겨우 공항에 도착해서 정말 옷만 갈아입고
매우 안좋은 상태로;; 타임카드를 찍으러 뛰어내려갔다.
아, 아침형 인간이네, 새벽형 인간이네, 자랑스러워하던 내 모습은 어디에...

새벽 근무의 경우 아침 한시간은 통로에서 고구마양갱(芋洋館, 이모요-깡)을 판다.
오늘따라 '아리가또고자이마쓰' 발음이 안되서 ('가'에서 발음이 뭉개지고, '또->고'로 넘어가는데
혀가 헛돌아 '고자이마쓰'에서 버버벅대는 현상이;;;) 통로에서 아주 그냥 개망신을 당했다.
양갱 하나 팔때마다 아리가또를 두세번은 크게 외쳐주는데 번번히 그게 꼬이니 이거 원;;;
옆에서 떡 파는 언니들이 속으로 많이 웃었을거다. ㅠ.ㅠ

오늘은 반찬코너. 마키짱도 새벽 근무였다. 한가한 오전 시간, 둘이서 다정스레 보내야지 마음먹었는데
마키짱 표정이 안좋다. 종이를 들고 사무실을 들락날락 하는 것이 물건 주문 같지는 않고...

"주영짱. 나 어제 큰일났었다."
"무슨 일 있었어?"
"내가 맡았던 손님한테 클레임 들어왔어. 내가 물건을 잘못 준거 있지. 지금 그것 때문에 보고서 쓰는거야."

보고서를 보니 손님은 하필이면 멀기도 제일 먼 오키나와 사람이었다;;; 공항 판매는 이게 무섭다.
비행기 타고 가버리면 끝이니까 잘못 전달해주면 그냥 클레임으로 이어진다.
비행기 타고 바꾸러 올 수도 없으니까.

그 전화를 이케다상이 받았다던데, 그 때는 화도 하나도 안내고 그냥 원래 사려던 것만 보내줄 수 없냐고 정중하게 말하더란다. 그래서 마키짱도 아침에는 그냥 웃으면서 (속은 아니겠지만) 보고서를 썼는데, 이게 위로 보고가 될수록 일이 커지고 손님도 자꾸 딴소리를 하는 바람에 점장이 내려오고, 마키짱네 회사 사장이 전화걸고 난리도 아니었나보다. 물론 미팅 시간에도 여러번 거론되고...

관광가이드를 하는 친구가 그랬다. 일본 사람들은 앞에서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지만
돌아가자마자 바로 클레임 걸어서 사람 미치게 만든다고. 그러니 늘 조심하고 긴장하라고.
하지만 처음 한달 완전 블랙홀이었던 나. 그냥 지나가는 하루가 없었다.
이런 내게 반푼이 서비스를 받았던 불쌍한 내 손님들은 다행히도 무던하고 착했나보다. ;;;
부디 지나간 내 삽질 따위 다 잊고 좋은 분들에게 좋은 선물, 좋은 반찬들 되셨기를
오늘도 맘속으로 진지하게 빌어본다. ㅠ.ㅠ (참회의 눈물.. 쥘쥘..)
아, 사실 요즘 남들보다 실습배지 오래 달고 있는거 같아서 내심 쪽팔렸는데
생각해보면 이게 나를 지켜주고 있는 것 같다. 실습.. 갑자기 이 단어가 좋아진다.

여튼 오늘 마키짱은 밥도 못먹고 계속 사무실에 불려다녔다.
안그래도 김이 안팔려서 신경쓰느라 허리가 더 아프다던데, 얼마나 힘이 들까.
마키짱을 위해 시식용 센베과자를 몰래 한봉다리 담았다.
여기저기서 찌릿찌릿 지켜보는 사원들 눈에 심장이 벌렁벌렁 했지만 친구를 위해 용기를 내어 듬뿍!!!
맛있는 새우센베 먹고 기운 내. 마키짱 ㅠ.ㅠ


집에 오는 길에 또 수퍼에 들렀다. 배고플 때 장보면 이것저것 쓸데없는거 사게되어서 되도록 피하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결국 배가 고파서 장을 보는거니까. ;;; 하필 내가 좋아하는 박피;;단팥빵(薄皮餡パン) 미니 5개들이가 100엔 세일중이었다.
이름 그대로 빵이 얇고 팥이 실하게 들어있는 이 빵은 가격대비 최고의 양식. 단숨에 5개를 다 먹어버렸다;;; 그리고 후회했다. 아, 요즘 살이 좀 빠졌나 싶었건만 ㅠ.ㅠ

집에 와서는 인터넷으로 일본 노래를 잔뜩 받았다. 일본의 음반계를 불황으로 만들기 위해
오늘도 뒤지고 뒤져서 좋은 음원을 쏙쏙;;; 이제 가사를 보면서 공부도 하고 노래방 연습도 해야하는데
아직까지 게을러서 그냥 듣기만 한다. 아, 어이없게도 프린터가 사고싶다;;;
누구 준다는 사람 없는지 동호회나 뒤져봐야겠다. 집에도 노는 프린터 하나 있는데 갑자기 눈 앞에 두둥실 떠오른다.

좀 아까 들어온 김짱은 다시 운동하러 나갔다. 두 달째 하루 한끼에 동네 한바퀴.
존경스럽다. 김짱. ㅠ.ㅠ 부럽지만 나는 죽어도 못할 것 같구나. ㅠ.ㅠ

 


이젠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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