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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눌러앉기/2004-2006, Japan

오늘은 블랙데이

by 하와이안걸 2005. 4. 14.
4월 14일. 저녁 근무.


오늘따라 활기가 넘치는 저녁반 직원들이었다. 특히 후쿠다군의 변신으로 모두들 고무되어 있었다.
새로이 뿔테 안경을 낀데다, 짧게 자른 머리는 젤인지 무스인지로 삐죽삐죽 파격적으로 셋팅을 했는데
꽤 멋스럽게 어울렸다. 모두들 애늙은이 후쿠다의 회춘을 축하하며 시끌벅적 떠드는 가운데
사원들이 일렬로 등장하며 조회가 시작되었다.

헉! 그런데 저게 누구야. 하타노도 새로운 헤어스타일로 등장을 했다.
볼 때마다 밀어주고 싶던 구렛나루는 그대로 살린채;; 뒷머리를 짧게 치고 옆머리를 젤로 만졌는데,
양 옆 가운데를 향해 뾰족하게 만든 이상한 셋팅이었다. 머리에 띠만 두르면 완전 손오공.
본인은 모두의 탄성을 예상한 듯 쑥스러워하며 모습을 드러냈지만 다들 웅성거릴 뿐 별 반응이 없었다.
나는 귓속말로 이케다상에게 "드래곤볼 같지 않아요?"라고 말했는데 그걸 용케 들은 하타노가 내게 되물었다.
"아니 이상이 드래곤볼도 안단 말이야?" ;;;

아쉽게도 후쿠다의 머리는 조장언니의 따끔한 지적으로 인해 밑으로 가라앉았고,
하타노는 그 이상한 머리로 활보하고 다녔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찢어진 눈을 가늘게 뜨더니 다가왔다.
오늘은 또 뭘 물어보려나.

"원빈 좋아해?"
"에?"
"원빈 좋아해?"
"아, 가을동화 봤구나."
"응. 오늘도 보고 나왔어. 원빈이 좋아?"
"뭐. 그냥 보통. 그나저나 머리 잘랐네요?"
"(미소지으며) 응. 조금."
"드래곤볼 같아요. 어쩜 그렇게 가운데가 뾰족하게.."
"시끄러워." ;;;

금고 체크 때문에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이케다 혼자서 벽을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상. 이것좀 볼래?"

사무실 한쪽 벽면에는 공항에서 뽑은 역대 우수사원들의 영광스러운; 사진들이 주욱 걸려있었다.
거기에는 무서운 조장언니도 있었고, 미야자와의 2년전 모습도 있었다.

"아, 저도 가끔 이 사진들 봐요. 아는 사람은 둘밖에 없지만..."
"역시 이상도 눈치를 못챘군."
"네?"
"저기 오른쪽 맨 위에도 한명 있잖아."
"모르는 사람인데요?"
"가와사키(川崎)상이잖아."
"지금 있는 가와사키상이라구요? 저 사람이?"
"응. 그렇다니까."
"이름만 같은거 아니구요? 완전 다른 사람인데..."
"나도 이거 꽤 훑어보는 편인데 몇주 전에 알았지 뭐야. 놀랍지 않아? 지금이 훨씬 어려보이고 귀엽다구."

정사원인 가와사키상은 처음 본 순간부터 본 중 가장 귀엽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얼굴도 큰 편이고, 냉정히 말해 미인형은 아니지만 웃는 모습이랑 목소리가 너무 귀여워서
모두의 호감을 살만한 타입이었다. 그런데 사진속의 일년전 얼굴은 믿을 수 없을만큼 촌스럽고
개성도 없고 이상했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같은 사람일 수가 없었다.

"미스테리네요."
"그렇지? 역시 성형인걸까?"
"그러게요."
"오. 정말 이상이 보기에도 성형가능성이 있어보여? 난 내가 심한걸까 생각했거든."

순간 이케다상이 헉! 하며 놀랬다. 사무실 맨구석 책상에 하타노가 엎드려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타노라지만;; 정사원 앞에서 정사원 뒷담을 하다니... 그러나 하타노의 대답은 간결했다.

"내가 봐도 그 사진은 정말 쏠려요."

우리의 성형언급보다 그의 한마디가 더 막강했다. 그에게는 직속 선배가 아닌가.
이케다상과 나는 한건 잡았다는 성취감을 안고 사무실을 나왔다. 

"역시 하타노상이네요."
"쟤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집에 오는 길. 오늘이 블랙데이라는 걸 깨달았다. 양배추랑 돼지고기가 잔뜩 들어간 간짜장이 먹고싶다.
이런 날 짜장면이 먹고싶어지긴 또 처음이다. ;;; 우리 수녀회 멤버들은 다들 한그릇씩 챙겨먹었을라나...





이젠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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