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엄마의 여름.
산에서 들에서 캔 약초들과
옆집에서 가져다 주는 온갖 푸성귀들로
일감이 저절로 쌓이는 계절이다.
매일 나물을 다듬어 김치와 장아찌를 담그고
자식들이 오면 상에 내고 바리바리 싸주는 엄마의 삶.
서울에 살 때엔 오이지, 마늘장아찌 말고는
이렇게 저장 음식이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강화도에서는 온갖 반찬에 효소들로 남아나는 병이 없다.
다행히도 엄마의 시골 반찬은
늙어가는 자식들 입맛에도 잘 맞는데다
이건 뭐야, 어디서 났어, 어디에 좋아...
엄마와 긴 대화를 하기에도 딱 좋은 소재.
"오이지처럼 무쳐먹어도 맛있고
피클처럼 그냥 먹어도 향긋하니 맛있지."
"씀바귀 김치야.
최대한 연한 씀바귀로 만들어서 많이 쓰지 않을거야.
이건 약이려니 하고 부지런히 먹어."
집 주변이 모두 고추밭이라
이웃 분들이 나눠주기도 하고
수확이 다 끝나면 주워가라고도 하셔서
엄마는 늘 횡재한 기분으로 이 장아찌를 담그신다.
짜게 삭히기고 하고, 새콤하게 절이기도 하면서.
https://hawaiiancouple.com/1390
지난 포스팅에 생중계하듯 올렸던 여름 김장 김치.
아직도 김치 냉장고에 가득 남아있다.
배추를 잘못 샀나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물러지지 않는 신기한 김치.
맵고 질긴 이 김치는 엄마의 숙제.
며칠 물에 담가 매운기를 빼고
찹찹찹 썰어서 들기름에 달달 볶아
반찬으로 며칠 먹고,
좀 질린다 싶을 때 냉동실에 소분하여 보관했다.
돼지고기 숭덩 넣고 김치밥을 하거나
청국장찌개에 넣어 먹음 아주 맛있다고!
"이건 진짜 맛있고 귀한 노지부추야!"
"아, 부추김치는 조금만. 남으면 처치 곤란이라서."
"이건 안 남을거야."
익으면 익을수록 매력이 훅 떨어지는 부추김치.
그런데 이건 끝까지 아삭아삭 씹는 맛이 살아있다.
"엄마, 이 부추김치 진짜 신기하게 맛있네!"
"그치? 근데 엄마가 힘들어서 당근이랑 양파를 너무 크게 썰었다. 미안해."
그게 무슨 소리야 ㅠㅠㅠㅠㅠㅠㅠ
이젠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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