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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눌러앉기/2004-2006, Japan

오카베의 명강의

by 하와이안걸 2005. 4. 21.
4월 21일. 새벽 근무.


간만에 새벽에 일어나려니 죽을만큼 힘들었다. 어제 12시 넘어서 잤는데 3시 40분에 일어나려니 당연한 일. 게다가 어제는 귀찮아서 도시락도 싸지 않았다. 김짱이 도시락을 싸기 시작해서 냉장고에 반찬도 제법 있건만 쌀 씻기가 귀찮아서;;; (오~ 너무 쉽게 변해가네~ 오~ 너무 빨리 변해가네~ ㅠ.ㅠ 둥둥두루둥~)

간만에 후쿠다와 단둘이 센베를 팔았다. 이 아이는 점점 다크서클이 심해진다. 건너편 코너에서는 안스럽기 그지없는 후쿠다 얼굴을 보며 쿡쿡대느라 정신들이 없다.

"후쿠다군. 눈이 반쯤 감겨있네요."
"네. 게다가 오늘 렌즈도 빼먹고 와서 보이지도 않아요."
"위험하네."
"네. 근데 이상도 많이 피곤해 보이네요. 아직도 힘든가요?"
"네. 좀 아까도 금고 체크하는데 쉬운 계산을 틀려서 사원들 앞에서 너무 창피했어요."
"원래 좀 익숙해질 무렵이 가장 위험하죠. 저도 얼마전에 지각 한번 크게 했잖아요. 그런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힘들더라도 계속 긴장하고 있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이상은 왠지 긴장이랑은 안 어울리는데..."
"그렇게 보여요?"
"네. 긴장같은거 모른채 슬슬 즐기면서 사는게 어울리는 그런 사람..."
"아, 제대로 봤네!"

속 깊은 후쿠다와 간만에 인간미 넘치는 대화를 나누는데 여장부 오카베가 바람처럼 등장했다. 눈 마주치고 인사할 새도 없이 고상을 잡기 시작했다. 오늘 간만에 만쯔로 만난 두 사람. 이제 고상도 좀 익숙해져서 오늘만큼은 지지 않을 눈빛이다.

"고상. 택배로 보낼 때는 전표에 이거랑 이거랑.."
"(말 끊으며) 그거 알고 있어요."
"그리고 이 수입인지는.."
"(말 끊으며) 그것도 알아요."
"고상!!!"

역시나 불꽃이 파파박 튀는 대화가 이어졌다. 후쿠다와 나는 불똥에 맞지 않기 위해 슬금슬금 옆걸음질 쳤다. 잠시 후 오카베가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고상은 아무래도 이상해. 난 이해할 수가 없어."
"예를 들면?"
"아까 내 말 중간에 끊는거 혹시 봤어? 그것도 기분 나쁘고, 손님들에게 건네는 말투도 내가 보기엔 너무 위험해."

참 난감했다. 이럴 땐 뭐라고 말해야할지.. 나도 제대로 못하는 이 마당에;;;

"그래도 나처럼 말 때문에 곤란한 일은 없었잖아. 나 첫달에 비하면 일도 진짜 빨리 배우는편이고.."
"음..... 이짱.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군. 자, 그럼 말이지."
"응?"
"혹시 지금 잘 모르는 업무 있으면 얼른 나한테 다 물어봐."
"응?"
"이 만쯔 리스트에 있는걸 이짱부터 얼른 익혀야 해. 알았지? 아직 안해본 업무가 있다거나 시뮬레이션 필요하면 언제든지 물어봐. 알았어?"
"응. 좋아!"
"오케. 어라라? 근데 지금 고상 어디간거야? 만쯔인 오카베를 이렇게 맘대로 떠나다니!"

오카베는 고상을 찾으러 다시 씩씩거리며 나갔다. 그래. 흔치않은 명강의. 열심히 배우고 익히고 기름치자;;;

점심 먹고 아이란도 레지 점검을 하는데 카오리짱이 "온니 온니"하며 말을 건다.

"온니! 온니는 이상이 아니고 리상이지?"
"아니. 이가 맞는데..."
"하지만 영어로는 LEE 아니야?"
"응. 그건 맞는데... 음.."
"내 남자친구도 LEE 군이란 말이야. 근데 자기 이름 '이'라고 한번도 말한적 없단 말이야!"
"원래 발음은 리가 맞는데 한국에서는 이라고 불러. 북한에서는 리라고 부르지만.."
"아, 나 그럼 남자친구에게 그 동안 속은거야?"
"둘이 영어로 대화했으면 그럴 수도 있지 뭐;;;"
"아, 속은거였어. 오늘 메일에 꼭 물어봐야지."

갑자기 해피한 표정으로 바뀌는 카오리짱, 뭔가 생각났다는 듯 다시 말을 걸었다.

"근데 온니는 남자친구 있어?"
"아니;;;"
"얼마동안 없었어?"
"몰라;;;"

갑자기 불쑥 다마키군이 끼어들며 말했다.

"다마키는 무려 2년 반동안 혼자랍니다~"
"아. 네.."
"어쩌면 넘을지도 모르겠네요. 사실은 잘 기억나지 않거든요. 오, 다마키 설마 3년???"

일본애들 저런 3인칭 잘쓰긴 하지만 남자애가 지 이름을 저렇게 좋아라 부르는 애는 처음이다. 내가 보기에 다마키는 카오리에게 관심이 있어 보인다. 과연 한일커플의 결말은 어떻게 날 것인가!!!
 
집에 가는 길에 공항 사무실에 들러 치마 사이즈를 하나 큰거로 바꾸었다. 결국;;;
그나저나 새로 꺼내온 치마에는 허리부분에 살짝 고무줄이 달려있었다. 왠지 참담했다. ㅠ_ㅠ
단지 한 사이즈 늘렸을 뿐인데.. 아, 다시 찾아오리라. 기다려라 11호여!!!





이젠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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