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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눌러앉기/2004-2006, Japan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

by 하와이안걸 2005. 4. 20.

4월 20일. 저녁 근무.


"이상. 이름이 쥬용이야? ;;;"

출근하자마자 내 타임카드에 적힌 풀네임(ィジュヨン)을 보고 하타노가 말을 걸었다.

"네. 원래는 주.영.인데요. 이렇게밖에 쓸수가 없네요."
"쥬.용. 맞잖아."
"주.영. 이에요."
"응. 쥬.용."
"(에잇 ㅡ.ㅡ;;;)"
"그럼 앞으로 쥬용짱이라고 불러도 돼?"
"그건 상관없는데 되도록 발음을 좀 더 정확하게..."
"응. 알았어. 쥬용짱." ;;;

오늘따라 하타노랑 일할게 많아서 하루종일 '쥬용짱'이라 불렸다.
그럴때마다 직원들은 쟤가 또 누굴 잘못부르나 두리번 두리번 거렸다. ;;;
잠깐이겠지만 그래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세 번째 사람이다.

"하타노상 이름은 뭔데요?"
"준이치(潤一)."
"아, 주니치 드래곤즈의 주니치?"
"그건 주니치(中日)고!"
"그러니까요. 똑같잖아요."
"말도 안돼. じゅんいち 랑 ちゅうにち 랑 어떻게 똑같애."
"난 똑같이 들리는데..."
"아, 내 발음이 정말 그 정도인가?"

그렇다. 공항 남자들 중에서 말을 또박또박 하는애는 후쿠다뿐이다.
나머지는 어찌나 못알아듣게 궁실궁실 쉐쉐쉐 거리는지...
잘 못알아들어 대화에 마가 뜰때마다 나는 발음 핑계를 대며 뒤집어씌운다.

오늘도 하타노가 뭔가를 주문을 외듯이 중얼중얼 말을 걸었으나 오늘따라 죄다 중국말로 들렸다. ;;;
기억나는 건 공항에서 여사원에게 고백을 받았는데 일이 바빠서 거절했다며 내가 믿나 안믿나 눈치를 살폈다. 혹시 삐형이냐고 물어봤더니 아니나다를까 정답. 나에게도 무슨 형이냐고 물어보길래 얼른 내뺐다.
여기서는 내 혈액형이 삐형남자 못지않게 기피 혈액형이라 맘대로 물어보지도 못하겠다;;;
아직도 천재 아님 바보, 이중인격 이런 말을 듣다니 ㅠ.ㅠ

그렇게 슬슬 조심조심 일과를 마쳐갈 즈음, 반찬코너의 초밥, 젓갈 등을 파는
이름 잘 안외어지는 아저씨 사원이 말을 걸었다.

"이상. 여기 온 이유가 정확히 뭐야?"

간단명료. 많이 들었음직한 질문이었건만 사실은 처음 받아본 질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다. 그리고 그 아저씨의 질문에는 뭔가 뼈가 있었다.
결국 돈벌러 온거 아니냐는 그런 느낌..

"제 비자는 워킹홀리데이라서요. 일년간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여행도 다니고 이것저것 접하면서 경험을..."
"(웃음) 아~"

나도 모르게 비자 설명을 하며;;; 버벅댔다.
사실 지금 내가 가장 고민해야할 부분이건만 아직도 중간점검을 하지 않았기에;;;

"그럼 언제가 일년이 되는데?"
"올해 12월이요."
"응. 그렇구나. 열심히 해."

그래. 열심히 하면 되지 뭐. 여유 생기면 여행도 다니고, 워킹답게;; 많이 돌아다니고 그러면 되는거지 뭐.
그리고 10분 후, 마키짱이 달려왔다.

"주영짱. 5월에 한국가면 정말 안돌아와?"
"응? 그건 오빠 결혼식때문에 잠깐 다녀오는건데?"
"지금 ㅇㅇ상(그 아저씨;)이 주영짱 금방 돌아갈거라고 말하고 있어."
"ㅡ,ㅡ;;;"

저 사람도 아웃. 퉤퉤.

퇴근하며 다시 타임카드를 꺼내는데 하타노가 또 말을 건다.

"신화 좋아해?"
"멤버 몇명만. 근데 신화를 어떻게 알아요?"
"나 원래 공부 열심히 하잖아."
"요즘은 뭐 외우는데요?"
"괜찮아요,랑 안괜찮아요.";;;
"담배는요."
"응..... 근데 이상 이름이 뭐였더라.. 잠깐만..."
"수고하셨습니다."
"아! 쥬용짱이다. 그치? 맞지?"
"오..."
"응. 유카리 센베 14매(じゅうよん, 쥬-욘;;)로 외웠어."
"ㅡ,ㅡ;;;"

옆에서 듣고 있던 이케다상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쥬용짱.. 쥬용짱..

내 이름을 불러주는 네 번째 사람이려나.



   
이젠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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